3일 US오픈 3회전 경기를 마치고 세리나 윌리엄스가 관중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USTA

이렇게 ‘세리나 시대’가 저무는 것일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제 세리나 윌리엄스(41·미국·세계 605위)가 사실상의 커리어 마지막 경기에서 석패했다.

윌리엄스는 3일(한국 시각) 미국 뉴욕 아서 애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US오픈 여자단식 3회전에서 아일라 톰리아노비치(29·호주·세계 46위)에게 3시간 5분 접전 끝에 1대2(5-7 7-6<7-4> 1-6)로 졌다.

앞서 윌리엄스는 1회전에선 단카 코비니치(몬테네그로·세계 80위)를 2대0(6-3 6-3), 2회전에선 아넷 콘타베이트(에스토니아·세계 2위)를 2대1(7-6<7-4> 2-6 6-2)로 제압하며 3회전에 진출했다. 지난달 30일 1회전 경기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 ‘스키 여왕’ 린지 본 등이 관전했고, 지난 1일 2회전 경기엔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 왕년의 테니스 스타 빌리진 킹과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등이 경기장을 찾았다. 두 경기 모두 만석을 기록하며 마치 결승전을 방불케 했다. 모두 ‘여왕’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역사적인 경기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 것이었다. 윌리엄스는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할 생각을 여러 차례 내비친 바 있다.

이날 열린 경기도 분위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세계 최대 규모의 아서 애시 스타디움(수용 인원 2만3771명)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응원도 일방적이었다. 관중석엔 ‘GOAT(Greatest of All Time, 역대 최고)’라고 쓰인 풍선을 들고 있는 팬도 있었고, 윌리엄스가 한 점만 따내도 관중들은 마치 그가 대회에서 우승이라도 한 듯 열광했다. 반면 톰리아노비치가 점수를 획득했을 땐 비교적 조용했다. 또 테니스 경기에선 선수의 실책이 있었을 땐 박수를 치거나 환호하지 않는 것이 관전 매너이지만, 이날 팬들은 톰리아노비치가 더블 폴트를 했을 때도 박수를 보내며 ‘라스트 댄스’에 나선 윌리엄스에 힘을 실었다. 2세트 도중에는 톰리아노비치가 주심에게 ‘왜 조용히 하라는 안내를 하지 않느냐’는 듯한 불만 섞인 동작을 보이기도 했다.

모두가 윌리엄스의 승리를 바란 가운데, 톰리아노비치는 기죽지 않고 힘을 냈다. 그는 윌리엄스를 상대로 서브에이스(3-11), 위너(32-49) 등에서 모두 밀렸지만, 범실이 적은 안정적인 플레이와 코트를 휘젓는 끈질긴 수비로 승리를 챙겼다. 윌리엄스가 실책 51개를 저지르는 동안 톰리아노비치는 30개에 그쳤다. 그는 브레이크 포인트 기회 13번 중 8번을 따내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3일 US오픈 3회전 경기가 끝난 후 세리나 윌리엄스(왼쪽)와 아일라 톰리아노비치가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뉴스

윌리엄스의 마지막 경기임을 모두 의식한 듯, 이날 경기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관중석에서 울먹거리는 팬들도 보였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US오픈은 소셜미디어에 “고마워요 세리나”라는 제목의 24분짜리 동영상을 올려 그가 걸어온 길에 경의를 표했다. 경기를 마친 후 윌리엄스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이 모든 것은 내 부모님 덕분에 가능했다”며 “그들에게 공을 돌리고 싶다. 지금 흘리는 이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라고 했다. 이어 “비너스가 아니었으면 세리나도 없었다”며 “비너스 덕분에 세리나란 사람도 존재할 수 있었다”고 해 관중석에서 지켜 본 언니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세리나 윌리엄스가 3일 경기를 마치고 인터뷰 도중 감정에 북받쳐 울먹이고 있다. /UPI연합뉴스

톰리아노비치도 “세리나는 테니스를 위해 헌신했다”며 “내가 세리나의 마지막 경기 상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세리나가 각종 대회 결승에서 뛰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지금 이 순간은 내겐 너무 초현실적이다”고 말했다. 이어 “세리나는 그 어떤 꿈도 달성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본인이 어디서 왔든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로써 20여 년간 테니스 무대를 호령했던 윌리엄스는 은퇴를 예고한 US오픈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게 됐다. 그는 2일 여자 복식 1회전에서 언니 비너스 윌리엄스와 한 조로 출전해 린다 노스코바-루시 흐라데카(이상 체코) 조에 0대2(6-7<5-7> 4-6)로 패한데 이어 단식 3회전에서도 지며 ‘라스트 댄스’를 멈추게 됐다.

3일 US오픈 3회전 경기를 마치고 세리나 윌리엄스가 경기장에서 퇴장하며 팬들의 환호에 답례하고 있다. /USTA

윌리엄스는 수식어가 필요 없는 전설이다. 윌리엄스는 18세 소녀이던 1999년 US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 올라 스위스의 테니스 스타 마르티나 힝기스를 꺾고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여자 단식 우승을 맛봤다. 윌리엄스는 이후 US오픈에서 5차례(2002, 2008, 2012, 2013, 2014) 더 정상에 올랐고, 메이저 대회 단식에서만 23차례 우승을 거머쥐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선 여자 단식 금메달도 목에 걸며 ‘커리어 골든 슬램(메이저 대회 제패 + 올림픽 단식 금메달)’을 완성했다.

언니 비너스 윌리엄스와는 한 때 세계 최강으로도 군림했다. 윌리엄스 자매는 US오픈 2차례(1999, 2009)를 포함해 1999년부터 2016년까지 메이저 대회 복식에서만 14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둘은 메이저 대회 외에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여자 복식 금메달을 목에 건 바 있다. 둘은 또 2002년 프랑스오픈 여자 단식부터 2003년 호주오픈 여자 단식까지 4차례 연속 메이저 대회 결승에서 실력을 겨루기도 했다. 같은 선수가 4차례 연속 메이저 대회 결승에서 만난 것은 이 둘이 유일하다. 세리나가 이 경기들에서 모두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