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리그에 선발되고, 팀이 우승하는 것은 400여 국내 프로기사들 모두의 꿈이다. 사진은 지난 시즌 통합우승 결정 후 기뻐하는 수려한합천 선수단 모습. /한국기원

‘바둑계의 메이저리그’라고 하는 KB국민은행바둑리그(이하 KB리그) 운영 방식이 올해 대폭 바뀐다. 한국기원은 20번째 시즌(2003년 시범 대회 포함) 개막에 앞서 다양한 변화를 추진 중이다. 바둑리그는 출전 9팀당 참가비 3억원과 국민은행 타이틀 스폰서 비용 10억원 등 37억원(작년 기준)으로 운영돼온 매머드 무대다.

최대 역점 사항은 강자끼리 맞붙는 빅매치를 최대한 유도한다는 내용이다. 현행 오더제는 결과가 뻔히 예상되는 대진이 속출, 흥미를 반감시켜왔다는 결론과 함께 폐기됐다. 구체적으로 승점제와 동일 지명자 대국 등 두 가지를 놓고 논의 중이다.

승점제는 대국 단계별로 승점을 차별화하는 것이다. 예컨대 1국보다 2국, 2국보다 3국 승자가 더 많은 승점을 받는다. 각 팀이 총승점을 높이기 위해 주전을 막판에 배치하게 돼 자연스럽게 강자 대결이 이뤄진다. 또 같은 순위자끼리만 대결시키는 동일 지명 방식도 유력 검토되고 있다.

둘째는 속기화(速棋化)다. 지난 시즌엔 5판 모두 1인당 1시간(60초 3회)씩 제공해 3~4시간 만에 끝나곤 했다. 이를 2시간 이내에 마무리해 빠른 템포를 원하는 시대 흐름에 맞추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전면 속기 방식을 도입하면 5판을 동시에 시작하지 않고 두 타임으로 나누게 된다. 시청자들이 접하는 판수를 2~3국으로 늘리기 위한 방편이다. 바둑TV에 따르면 동시 대국 방식으로 치른 지난해엔 시청자들이 하루 접할 수 있는 평균 판수는 1.5국에 불과했다.

셋째는 해외 용병(傭兵) 도입이다. 수년 전부터 중국 상위권 기사 몇 명에게 의사를 타진, 긍정적 답변도 얻어냈다. 한국 기사들이 10여 년 전부터 중국 갑·을조 리그에서 맹활약해온 터여서 명분과 실리 모두 충족할 수 있다.

단 용병 문제는 코로나 사태 추이가 변수다. 여자리그는 2015년부터 적용, 위즈잉 왕천싱 셰이민 등 유명 스타들이 참가해 리그를 빛냈지만 코로나 사태로 2020년 이후 중단됐다. KB리그 측은 일단 용병 규정을 명문화하고 비대면(非對面) 대국을 포함해 어떤 식으로든 빗장을 풀 태세다.

넷째로 그간 일방통행식이던 팬 접촉면을 대거 넓히기로 했다. 특히 온라인을 이용한 시청자 참여 확대를 시도할 방침이다. 바둑TV 임진영 본부장은 “뉴미디어를 통해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는 것은 바둑계 전체의 숙원이기도 하다”며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KB리그는 소속 팀 연속성이란 근본 문제는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구단제도, 계약제도 아니다 보니 선수들은 매년 ‘헤쳐 모여’식으로 팀을 옮겨 다니고, 팬들은 선수들의 바뀐 소속팀을 새로 기억해야 하는 불편함이 20년째 반복되고 있다. 단체전을 계속하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그럼에도 KB리그가 바둑계에 끼친 공로는 매우 크다. 19년간 쌓인 최고 수준 대국이 1만판이 넘는다. KB리그의 확고한 ‘텃밭’ 역할에 조훈현 이창호에서 신진서에 이르는 스타들은 한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이끄는 것으로 보답했다. 프로 입단자들에게 소망을 물으면 열에 아홉은 “바둑리거가 되는 것”이라고 답한다.

올해 리그는 9월 선수 선발전에 이어 10~11월경 정규 시즌에 들어간다. 작년보다 한 팀 늘어난 10팀이 출전할 가능성도 있다. 한종진(기사회장) 바둑리그 개혁위 위원장은 “역대 대회 중 가장 박진감 넘치는 시즌이란 평가를 받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