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보>(66~80)=바둑은 다른 어떤 승부보다 논리적, 과학적인 게임이다. 사행(射倖)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하지만 승착은 항상 논외이고 패착만 부각된다. 이유가 뭘까. 장면마다 ‘오직 한 수’의 절대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등장 후 아예 모든 착점이 점수화, 서열화됐다. 악수나 패착은 호수, 승착보다 훨씬 뚜렷이 노출된다.

흑이 ▲로 한 칸 뛴 장면. 자체 강화와 함께 좌우 백에 대한 공격을 은근히 엿보는 요소다. 백도 눈치 채고 66~70으로 양쪽 보강을 서둔다. 바로 이때 71이란 악수가 등장했다. 참고 1도 1이 AI가 제시한 정답. 이랬으면 4 이후 A에 건너붙여 끊는 맛이 남았을 것이다. 사소한 실수 같지만 치명적 에러였다. 당장 72~76으로 양쪽 백의 연결을 도와줬다.

77 전개가 불가피할 때 78로 상변을 지켜 백 호조의 흐름이 이어진다. 상변의 골이 깊어지자 79로 삭감에 나섰는데, 아예 전면 폭파로 승부를 걸어볼 장면이었다. 참고 2도가 하나의 예. 71이 남긴 심리적 여파가 여기까지 미치고 있다. 백 80은 79를 직접 공격하는 대신 상대 착점을 보며 대응 방향을 정하겠다는 전략. 흑이 대실착의 족쇄를 벗어던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