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시구하는 전두환

23일 향년 90세로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스포츠를 통치 수단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전 전 대통령은 불법적인 12.12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다. 총과 칼을 앞세워 얻어낸 결과물은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치부를 조금이나마 감추기 위해 전 전 대통령은 국민들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 했고, 이때 등장한 '우민화 정책'이 스포츠(Sports), 성(Sex), 스크린(Screen)으로 통하는 이른바 '3S'다.

전 전 대통령에게 스포츠는 그저 국민들의 정치 관심을 줄이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5공화국 초기인 1982년 프로야구가 이런 배경에서 출범했다.

고교야구의 인기를 프로야구로 이어가겠다던 신군부의 구상은 적중했다. 1982년 3월27일 서울운동장에서 전 전 대통령의 시구로 막을 올린 프로야구는 숱한 화제를 낳으며 국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전 전 대통령은 1년 뒤인 1983년 프로축구리그까지 꺼내들었다. 9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던 프로씨름과 현 프로농구의 모태가 된 농구대잔치가 처음 열린 것도 이때였다.

5개팀이 참가한 프로축구리그 원년의 프로팀은 유공과 할렐루야 뿐이었다. 나머지 3개팀인 대우, 포항제철, 국민은행은 모두 실업팀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쉽게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졸속에 가까웠지만 권력자의 의지에 반기를 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연이은 프로 스포츠의 출범과 동시에 전 전 대통령과 신군부는 좀 더 강력한 통치 수단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이다. 박정희 정권 말미부터 물밑 작업을 벌이다가 1980년 12월 국가올림픽위원회(IOC)에 1988년 올림픽 유치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한국은 1981년 9월 바덴바덴에서 치러진 IOC 총회에서 일본 나고야를 밀어내고 하계올림픽 개최권을 가져왔다. 선진국이 아닌 국가로는 최초의 일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쿠데타 세력이자 2인자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초대 체육부 장관을 맡기며 서울올림픽 유치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서울올림픽은 6.25 전쟁으로 초토화됐던 한국의 발전을 전 세계에 알림과 동시에 팽팽하게 대립하던 미국과 소련의 동반 출전으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은 외국인들에게 깨끗한 서울을 보여줘야 한다는 일념으로 판잣집들을 강제로 철거하고 수용소를 만들어 부랑자들과 노숙자들을 가두는 정책을 실행에 옮겼다. 불법감금과 암매장 등으로 세상을 놀라게한 형제복지원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도 이때였다.

한편 역사적인 서울올림픽 개회선언의 영예는 개막 1년 전 직전제로 뽑힌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돌아갔다. 전 전 대통령은 개회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퇴임 직후 각종 개인 비리와 5공화국 시절 악행이 불거진 전 전 대통령이 등장할 경우 관중이 야유할 것을 우려한 노 전 대통령이 참석을 막았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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