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FIFA 랭킹 22위)의 골키퍼 야신 부누(31·세비야)가 조국을 사상 첫 월드컵 8강으로 이끌었다.

모로코 골키퍼 야신 부누가 7일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서 세르지오 부스케츠의 킥을 막아내고 있다./AFP 연합뉴스

그는 7일 알라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스페인(FIFA 7위)과 벌인 16강전에서 전·후반 90분과 연장 전·후반 30분까지 120분 동안 골을 내주지 않았다. 후반 추가 시간에 상대 다니 올모(라이프치히)의 프리킥을 선방했다. 부누에겐 연장 후반 막판 스페인의 파블로 사라비아(파리 생제르맹)의 슈팅이 크로스바를 살짝 맞고 빗나간 순간이 가장 큰 실점 위기였다.

부누의 진가는 승부차기에서 드러났다. 모로코가 선축을 성공해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스페인의 첫 키커로 나선 사라비아가 실축했다. 공이 오른쪽 골포스트 아래쪽을 때리고 나왔다.

모로코 골키퍼 야신 부누가 7일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서 스페인 두 번째 키커 카를로스 솔레르의 킥을 막아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자신감에 찬 부누는 스페인 2번 키커 카를로스 솔레르(파리 생제르맹)가 오른쪽으로 찬 공을 쳐냈고, 3번 키퍼 세르히오 부스케츠(FC 바르셀로나)가 왼쪽으로 때린 슈팅도 막아낸 다음 웃음을 지어 보였다. 모로코는 결국 승부차기 3-0 승리를 거뒀다.

부누는 2021-2022시즌 세비야 소속으로 라 리가 31경기에 출전해 24골(경기당 0.77골)만 내주며 최소 실점률을 기록한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리카르도 사모라 상을 받았다.

모로코 혈통을 지닌 그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나 이중 국적을 갖고 있다. 2011년부터 모로코의 연령별 대표를 거쳐 2013년 성인 대표팀에 데뷔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대표로 뽑혔는데, 본선 무대에서 뛰지는 못했다. 당시 모로코는 B조 4위(1무2패·승점 1)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3차전에서 스페인과 2대2로 비기며 유일한 승점을 따냈다.

모로코와의 16강전 승부차기에서 슈팅이 계속해서 모로코 골키퍼에 막히자 당혹스런 표정을 짓는 스페인 선수들./EPA 연합뉴스

세계적인 골키퍼로 성장한 부누는 카타르 월드컵에 자국 주전 골키퍼로 나섰다. 크로아티아와 벌인 F조 1차전부터 무실점(0대0) 했다. 캐나다와의 3차전(2대1 승리)에선 동료 나예프 아게르드(웨스트햄)의 자책골로 클린 시트(무실점)를 이어가지 못했으나 16강전에서 다시 무실점 활약했다.

부누는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2차전(2대0 승리)은 뛰지 않았다. 경기 직전 그라운드에 나가 국가까지 부른 다음 교체됐다. 앞선 크로아티아전에서 상대 선수와 충돌한 후유증으로 시야에 불편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감독 부임 3개월 만에 8강 이끌어 - 아프리카의 모로코가 7일 카타르 월드컵 16강전에서 스페인을 승부차기 끝에 꺾고 8강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승리 후 선수들이 왈리드 라크라키 감독을 헹가래 치는 모습. 라크라키 감독은 부임 3개월 만에 탄탄한 수비 조직력을 다져 모로코의 월드컵 사상 첫 8강 진출을 이뤄냈다. /AFP 연합뉴스

모로코는 부누가 골문 앞을 든든하게 지키면서 조별리그를 포함해 4경기에서 1골만 내줬다. 그 실점도 자책골이었다. F조 2차전에선 2022년 트로페 야신 수상자인 티보 쿠르투아(레알 마드리드)가 지키는 벨기에 골문을 두 번 여는 집중력도 뽐냈다. 트로페 야신은 골키퍼의 발롱도르에 해당한다. 세계 최고 권위의 상 발롱도르를 수여하는 잡지사 프랑스 풋볼이 2019년 제정했다. 1950~1960년대 소련의 전설적인 골키퍼 레프 야신에서 트로피의 이름을 땄다.

부누의 이름인 야신(Yassine)은 소련의 야신(Yashin)과는 관계가 없다. 국내 외래어표기법만 같을 뿐이다. 하지만 부누 야신은 벌써부터 내년 트로페 야신의 수상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모로코의 종전 월드컵 최고 성적은 1986 멕시코 대회 16강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중동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선 아랍권 국가 중 유일하게 조별리그를 통과한 데 이어 아프리카 팀으로는 역대 4번째로 8강까지 진출했다. 20세기 초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모로코로선 기쁨이 남달랐다. /도하=성진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