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아 보이는 아랍식 전통 의상에도 ‘패션’이 있다. 카타르인들이 머리에 두르는 두건인 ‘구트라(Ghutra)’다. 외지인이 보기에는 똑같아 보이는 이 구트라는 브랜드부터 디자인까지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흰색은 ‘깨끗함’, 빨간색과 흰색을 섞으면 ‘애국심’, 검은색과 흰색은 ‘자유’라는 뜻도 담는다고 한다. 구트라를 따로 관리해주는 전문 세탁소는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다.

구트라는 카타르 월드컵을 보러 온 팬들에게도 가장 ‘핫’한 패션 아이템이다. 카타르 상인들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32국의 상징 색으로 구트라를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판매 중이다. 가격은 80리얄(약 2만4000원) 정도. 태극 무늬가 그려진 ‘한국 구트라’도 붉은 악마들에게 인기가 많다.

아르헨티나와 호주의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전이 열린 지난 4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여성 팬이 ‘구트라’를 두르고 응원하고 있다. /로이터 뉴스1

포르투갈을 상징하는 자주색 구트라를 쓴 한 팬은 “이슬람 국가라서 이런 면에 굉장히 보수적일 줄 알았는데, 맞춤식으로 마련돼 있어서 놀랐다”며 “구트라를 쓰면 카타르 사람들이 볼 때마다 ‘엄지 척’을 해준다. 신나서 더 쓰게 된다”고 했다. SBS 해설위원으로 카타르에 온 이승우(24·수원FC)도 구트라를 쓰고 찍은 사진을 본인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어디서든 환영받는 ‘구트라 쓴 외국인’이 못 가는 곳이 있다. 바로 호텔 바(bar)다. 카타르는 모든 식당에서 주류 판매를 금지하는 대신, 외국인을 위해 고급 호텔에 있는 바에서만 약간의 음주를 허용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이 구트라를 쓰고 이런 바에 갔다가 얼굴을 붉히면서 나온다. 호텔 바의 직원은 “구트라는 기도할 때 입는 복장이다. 이걸 입고 술을 마시는 건 우리 입장에서 불쾌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인이 모이는 대규모 국제대회에선 서로 다른 문화 탓에 이런 모습이 종종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