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축구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카타르 도하 알 에글라 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을 했다. 동료들과 함께 몸을 풀고 있는 손흥민. 도하(카타르)=송정헌 기자

‘캡틴 조로’가 되어 돌아왔다.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 주장이자 공격의 핵심인 손흥민(30·토트넘)이 16일 새벽 도하에 입성했다. 그는 이날 오전 알 에글라 트레이닝 센터에선 선수단 단체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대표팀은 주장이 태극전사 26명 중 마지막으로 합류할 때까지 촬영을 미뤘다. ‘완전체’를 이룬 팀 분위기는 밝았다.

이후 손흥민은 검은색 안면 보호대를 착용하고 가볍게 몸을 풀었다. 20분가량 달리기와 스트레칭을 하고, 동료 선수들과 공을 주고받았다. 부상 부위를 충격에서 보호하는 마스크는 소속 구단인 토트넘이 특별 제작했다. 딱딱한 카본 파이버 소재이며, 양쪽 눈을 제외한 얼굴 위쪽 절반가량을 덮는 형태다. 검술의 명인이자 협객 캐릭터인 영화 주인공 ‘조로’가 쓰는 것과 비슷했다. 측면엔 그의 배번인 7이 흰색으로 새겨졌다. 마스크는 여러 개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날그날의 얼굴 상태에 맞추기 위해서다.

월드컵 D-4… 마스크맨 손흥민 “전력질주 문제없다” - 2022 FIFA(국제축구연맹) 카타르 월드컵 개막을 닷새 앞두고 ‘마스크맨’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흥민이 16일 카타르 도하 알 에글라 훈련장에서 열린 축구 대표팀 훈련에 참가해 몸을 푸는 모습. 지난 2일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경기에서 상대 수비수와 부딪혀 안와골절상을 당했던 그는 수술 후 소속팀 토트넘이 자체 제작한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월드컵에 나선다. 손흥민은 “아직 헤딩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최근 소속팀 훈련 때 전력 질주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도하=장련성 기자

손흥민은 본격적인 전술 훈련은 참여하지 않고 따로 사이클을 탔다. 햄스트링 부상에서 회복 중인 김진수(전북 현대), 다리에 가벼운 통증이 있는 황희찬(울버햄프턴)과 함께였다. 손흥민은 “무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구단에서 이미 마스크를 착용하고 훈련을 했기 때문에 어색하지는 않다. 이틀 전에 전력 질주를 해 봤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손흥민이 수술 후 12일 만에 공을 다루는 운동을 시작했다는 점은 놀랍다. 그는 지난 2일 마르세유(프랑스)와 벌인 챔피언스리그 원정 경기에서 상대 선수에게 얼굴을 부딪혔다. 왼쪽 눈 주변 4곳이 골절됐다는 진단을 받고 4일 수술을 했다. 회복 기간을 줄이려고 일정을 하루 당겼다. 12일엔 카타르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고, 같은 날 토트넘의 홈 구장을 찾아 관전하며 동료 선수들을 응원했다.

이젠 실전이다 - 한국 축구 대표팀 주장 손흥민이 16일 새벽 카타르 도하에 입성하며 대표팀 26명 전원이 결전지에 모였다. 한국 선수들이 이날 오전 도하의 알 에글라 훈련장에서 러닝하며 몸을 푸는 모습. 가운데에 검정 마스크를 쓴 손흥민이 보인다. /도하=장련성 기자

손흥민은 이후 런던에서 치료를 하다 결전지에 입성했다. 그가 도착한 0시 44분 무렵 도하의 하마드 국제공항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한국 팬들과 현지인, 취재진이 북새통을 이뤘다. 손흥민이 흰색 티셔츠에 검은색 바바리코트, 뿔테 안경 차림으로 입국장에 들어서자 환호가 터졌다. 손흥민은 공항 관계자와 보안 요원, 축구협회 직원의 호위 속에 머리를 살짝 숙인 채 이동했다. “손흥민 파이팅!”을 외치는 팬들의 응원이 들릴 때는 고개를 들어 미소로 답례했다.

2021-2022시즌 프리미어리그 공동 득점왕 손흥민에 대한 관심도는 현지에서도 대단하다. 외국 취재진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도 그의 건강이다. “1%의 가능성만 있다면 앞만 보고 달려가겠다”는 손흥민에게 안면 마스크는 반드시 월드컵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상징한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가 이번에 그라운드를 밟을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무리해서 뛰다간 선수 생활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 파울루 벤투 한국 대표팀 감독의 고심은 깊다.

손흥민 왼쪽 눈 옆 선명한 수술자국 - 손흥민이 16일 훈련을 마친 뒤 기자회견 하는 모습. 왼쪽 눈 위에 수술 자국이 보인다. /연합뉴스

2014 브라질, 2018 러시아 대회에서 총 세 골을 넣고도 조별 리그를 통과하지 못해 눈물을 보였던 손흥민은 “잘하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제가 가진 에너지를 전부 쏟아붓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부상이라는 모래 폭풍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두려움은 없을까. 그는 “축구 선수는 어느 정도 리스크(위험)를 감수해야 하는 직업이다. 제가 팬들에게 조금의 기쁨이라도 드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두가 기다려 온 손흥민의 세 번째 드라마가 막을 올렸다.

/도하=성진혁·이영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