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과 긴장 - 김시우가 9일(현지 시각) PGA 투어 마스터스 골프 토너먼트를 앞두고 연습 라운드를 돌았다. 미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12번홀에서 샷을 한 후 날아가는 공을 바라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우승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골프를 쳤던 시절도 있죠. 지금은 마지막까지 한 타라도 더 줄이려고 해요. 오거스타의 유리알 그린은 골프란 그런 거라고 가르쳐 주는 것 같아요.”

88회 마스터스 개막을 이틀 앞둔 9일(현지 시각)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올해로 8년 연속 이 무대를 밟는 김시우(29)를 만났다. 그는 18번 홀(파4) 그린 여러곳에서 공을 굴려보면서 현장 적응을 꼼꼼이 마쳤다. 팬들도 그 장면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한 미국인은 “시우 킴은 이제 PGA 투어 베테랑 아니냐. 이번 대회에서도 좋은 경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 때 ‘골프 신동’으로 통하던 그는 어느덧 PGA 투어 12년 차다. 17세이던 2012년 PGA 투어 사상 최연소로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했고, 2017년 ‘제5의 메이저 대회’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선수 마스터스 출전 기록에선 2위. 1위는 최경주(54)의 열두 차례(2003~2014년)다. PGA 투어 우승 횟수(4승)도 최경주 8승에 이어 2위. 4승 중 3승은 최경주가 우승한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둘 사이 인연이 남다르다.

김시우 역시 ‘그린 재킷’(마스터스 우승자가 입는 옷)을 입는 꿈을 갖고 있다. “아직 입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고 웃으면서도 “재작년부터 코스가 눈에 익으면서 확실히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모든 그린에서 조심해야 한다는 원칙은 분명해요. 1번 홀에서 3번 홀까지는 크게 어렵지 않은 만큼 타수를 줄이면서 시작하고 까다로운 4~5번 홀은 조심하고, 후반 ‘아멘 코너(11~13번 홀)’에서는 바람이 수시로 바뀌는 12번 홀(파3)에서 큰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하고 가장 쉬운 홀 중 하나로 꼽히는 13번 홀(파5)에서는 타수를 줄여야겠죠.” 김시우는 2017년 처음 출전해서는 컷 탈락했지만, 지난해까지 6차례 연속 컷을 통과했다. 최고 성적은 2021년 공동 12위다.

그래픽=김하경

오거스타의 유리알 그린은 빠른 데다 굴곡이 엄청나다. 실수를 만회하겠다고 덤비면 무너질 수 있다. 타이거 우즈(49·미국)도 2020년 그 유명한 12번 홀(파3)에서 세 차례나 공을 물에 빠트리며 기준 타수(파3)보다 7타를 더 치는 ‘셉튜플(septuple) 보기’로 자신의 한 홀 최악 기록을 남겼다.

최경주는 일전에 “마스터스 첫 홀 보기는 살림 밑천”이라고 비유했다. 첫 홀 보기를 하는 게 오히려 긴장의 끈이 풀리지 않도록 하는 각성 효과를 준다는 뜻이다. 김시우는 살을 보탰다. “샷 실수가 있으면 파가 아니라 보기로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더블보기를 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근 빗자루 퍼터라 불리는 브룸스틱 퍼터 대신 일반 퍼터를 쓰고 있다. 2022년 9월 미국과 세계연합팀 대항전 프레지던츠컵에서 애덤 스콧(41·호주) 조언으로 빗자루 퍼터를 사용하면서 슬럼프 탈출에 성공했지만 올 들어 일반 퍼터를 함께 사용하다 지난 2월 페블비치 프로암부터는 일반 퍼터를 쓰고 있다 한다. 그는 “빗자루 퍼터는 짧은 거리 퍼팅에 장점이 있지만, 일반 퍼터도 거리감을 맞추기 좋다는 장점이 있다”며 “앞으로도 상황에 따라 유리한 퍼터를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시우는 2017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이듬해 우승자 만찬에서 불고기를 대접해 호평받았다. 마스터스를 제패하면 더 맛있는 한식을 준비하겠다고 한다. 올해 마스터스 별도 행사인 ‘파3 콘테스트’(대회 전날 가족·지인이 캐디로 함께 참가하는 이벤트 경기)’에 아내(여자 프로 골퍼 오지현)와 더불어 지난 2월 얻은 아들과 함께한다. “지난해 아내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이번엔 아들까지 함께 오게 돼 정말 좋다”고 말했다. 김시우는 12일 오전 0시 42분(한국 시각) 비제이 싱(61·피지), 에밀리아노 그리요(32·아르헨티나)와 함께 1라운드를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