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신 마비로 전동차에 앉아 샷 - 하반신 장애를 지닌 미국의 애니 헤이즈가 20일 장애인 US오픈 2라운드 2번홀에서 전동차에 앉아 드라이브샷을 하고 있다. /USGA

“필드에 서면 나는 더는 장애를 걱정하지 않게 된다. 장애가 있다는 사실도 잊게 된다.”

래리 첼라노(53·미국)는 불과 열아홉이던 1989년 미군으로 참전한 파나마에서 작전 도중 척추에 총을 맞고 하반신이 마비됐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재활 도중 알게 된 골프였다. 상체의 힘만으로 잔디 위에 간신히 티를 꽂고는 전동차에 앉아 샷을 했다. 한 번 샷을 하는 것만으로도 진땀을 흘리던 그는 하루 서너 시간씩 연습을 거듭하면서 온종일 골프를 쳐도 더는 힘들지 않게 됐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파인허스트 리조트 6번 코스에서 19일부터 사흘간 치러진 제1회 장애인 US오픈 골프 대회는 참가자 96명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빛나는 대회다.

미국프로골프협회(USGA)가 올해 신설한 이 대회에는 15세 소녀부터 80세 할아버지까지 발달 장애와 다리 장애 등 다양한 장애를 지닌 11국 남녀 골퍼들이 참가했다.

파나마에서 총상을 입은 지 33년 만에 이 대회에 참가한 첼라노는 “국가를 위해 복무하던 내가 내셔널 챔피언십에 출전할 수 있어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가장 화려한 경력을 지닌 이는 켄 그린(63·미국)이다. 그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5승을 거두고 1989년에는 미국과 유럽팀의 골프 대항전인 라이더컵에도 출전했던 세계 정상급 골퍼였다. 그는 2009년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고도 골프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골프는 늘 도전할 용기를 주는 고마운 동반자였다”고 했다.

2007년 이라크에서 군 복무 중 폭발 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었지만, 의족을 한 채 미 PGA 투어 도전에 나서 감동을 주었던 차드 파이퍼(41·미국), 2019년 PGA투어 피닉스 오픈 연습 라운드에 참가해 “나는 할 수 있어”란 말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120야드 파3홀에서 티샷을 홀 2.5m에 붙였던 ‘다운증후군 골퍼’ 에이미 보커스테트(24)도 함께했다.

2018년 USGA에서 보비 존스 상을 받은 데니스 월터스(73)는 48년 전 골프 카트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이후에도 묘기 샷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장애인을 비롯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인물이다. 그는 “희망에는 유효기간이 없다”고 했다.

이승민 나이스샷 - 발달장애 선수 이승민이 19일 장애인 US오픈 1라운드 17번홀에서 티샷을 바라보고 있다. /USGA

한국에서는 발달 장애 선수로 첫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 투어 회원이 된 이승민(25)을 비롯해 고교 교사인 의족 골퍼 한정원(52), 발달 장애 이양우(24), 국가대표로 국제대회 금메달을 여럿 차지한 다리 장애 박우식(64) 등 4명이 참가했다.

이승민은 2라운드까지 2언더파 142타를 기록하며 2타 차 선두를 달려 남자부 초대 챔피언이 될 가능성을 높였다. 여자부에선 킴 무어(미국)가 12오버파 156타로 선두를 달렸다.

이 대회는 나이와 장애 종류에 따라 코스 길이를 다르게 하고 함께 경기해 최저타(3라운드 54홀)를 친 남녀 우승자에게 트로피를 수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