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비가 농구공을 손에 쥔 채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2008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신한은행에 입단한 뒤 한 팀에서만 뛰었던 김단비는 이번 시즌 우리은행으로 이적해 팀의 리그 선두 질주를 이끌고 있다. /오종찬 기자

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에 김단비(32)는 때맞춰 내린 단비였다.

김단비는 지난 시즌이 끝난 후 인천 신한은행에서 우리은행으로 둥지를 옮겼다.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신한은행에 입단한 김단비는 줄곧 한 팀에서 뛰었다. 득점상 3차례, ‘시즌 베스트5′에 6차례 이름을 올리는 등 꾸준한 활약을 선보이며 팀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이런 김단비가 신한은행을 떠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김단비는 변화를 택했다. 과거 신한은행에서 코치로 있으면서 김단비와 사제(師弟)의 연을 맺은 위성우(51) 우리은행 감독의 부름이 결정적이었다. 위 감독은 종종 김단비와 안부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나느냐’와 같은 농담을 건네곤 했다. 그러다 FA(자유계약선수) 시장이 열리자 위 감독은 마치 기다렸다는듯 김단비에게 ‘다시 함께해보자’고 말했고, 결국 김단비는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그는 27일 본지 인터뷰에서 “마지막까지 한 팀에서 뛴다는 건 큰 영광이지만 ‘이렇게 똑같이 하다가 은퇴하면 안 되겠다. 더 발전한 모습으로 코트에 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6번째 시즌, 더 발전하는 김단비

김단비는 신한은행에서 보였던 절정의 기량에다 한 수 더한 더욱 발전한 모습으로 팬들 앞에 섰다. 그는 지난 26일 용인 삼성생명전에서 22점 10리바운드 13도움으로 트리플더블(공수 3개 부문 두 자릿수)을 달성했다. 지난 시즌까지 총 4차례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던 그는 올 시즌 벌써 3차례 트리플더블을 추가하며 정선민(13차례·은퇴)에 이어 역대 2위에 올랐다.

김단비는 이번 시즌 경기 평균 18.41점(전 시즌 평균 12.77점)을 쏟아부으며 물오른 득점력을 보이고 있다. 김단비 스스로도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가장 폼이 괜찮았던 시즌으로 기억될 것 같다”고 말한다. 우리은행 관계자도 “시간이 지날수록 단비의 몸에 근육이 붙는 등 컨디션이 더욱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김단비의 활약 속에 우리은행은 선두(16승1패)를 달리며 순항하고 있다. 패배를 잊은 듯 최근 13연승을 달린다.

김단비의 목표는 통합 우승이다. 우리은행은 2012-2013시즌부터 2017-2018시즌까지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통합 6연패를 달성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청주 KB스타즈 등에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우리은행은 이번 시즌 지금까지 보여온 압도적 기량을 마지막까지 이어가고 싶어 한다. 그만큼 김단비의 어깨도 무겁다.

김단비는 리그에서 돋보이는 활약에도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 모든 것이 위 감독과 동료들 덕이라 말한다. 그는 “‘레이업슛을 할 때 시선 처리에 유의해라’같이 감독님이 과거 가르쳐줬던 것들을 요즘 다시 짚어줄 때면 ‘내가 그동안 잊고 있었구나’ 하고 깜짝 놀라곤 한다”며 “나의 습관에 대해 너무 잘 알고 계시고, 그에 맞는 지도를 해준다”고 말했다.

또 “나윤정, 최이샘은 다른 선수들이 더 나은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해주고, (김)정은 언니는 고참인데도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뭉치고 단합하는 팀 분위기 덕에 경기에 나서면 서로를 도우며 플레이한다”고 말했다.

◇”박지수와 제대로 맞붙고 싶어”

김단비는 경쟁 상대인 다른 구단 선수들에 대한 칭찬도 이어갔다. 2016-2017시즌부터 6년 연속으로 올스타 투표 1위는 김단비의 몫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신지현(27·부천 하나원큐) 차지였다. 김단비는 “신지현은 팀의 에이스로 어려움을 잘 극복하는 선수”라며 “한 선수가 6년 연속 1위를 하는 것보다 더욱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아쉬움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앞서 KB스타즈의 박지수(24)가 공황장애를 이겨내고 돌아왔을 때 김단비와 박지수가 경기장에서 뜨거운 포옹을 나눠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단비는 “‘어린 선수가 부담이 얼마나 많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김단비는 “지수는 홀로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선수인 만큼 은근히 걱정도 된다”면서도 “감독님이 나를 우리은행으로 부른 이유는 이기기 위해서다. 한번 제대로 맞붙어 보고 싶다”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김단비는 여자 농구에 대한 아낌없는 성원을 당부했다. 그는 “비록 NBA(미 프로농구)처럼 화려한 덩크슛을 꽂아 넣는 건 아니지만, 한 점 한 점을 위해 선수들이 함께 달리고 누군가는 희생하기도 한다”며 “스포츠는 함께 만드는 것인데 지금 여자 농구가 바로 그 모습”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