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재만 스포츠조선 기자 그래픽=백형선

지난 15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과 두산의 프로야구 경기에선 만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홈팀 키움이 1-4로 끌려가던 8회말 1사 1루, 키움의 이정후(24)가 타석에 들어섰다. 중계 카메라는 외야석에 앉은 두 여성 팬을 비췄다. 이들은 ‘이정후 여기로 공 날려줘’라고 적은 스케치북을 들고 있었다.

이정후는 마치 이 모습을 보기라도 한 듯 두산 투수 정철원의 시속 148㎞ 직구를 받아쳐 이 팬들에게 홈런 타구를 배달했다. 발치에 떨어진 공을 집어든 두 여성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정후도 “경기 후에 코치에게 얘기를 듣고 ‘정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었다”며 놀라워했다.

이종범

이 장면뿐만이 아니라 그의 인생 전체가 만화 같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LG 2군 감독)의 아들로 태어나 운명처럼 야구를 시작했고, 만화 주인공처럼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프로 데뷔 시즌이던 2017년 타율 0.324(552타석 179안타)로 신인왕을 거머쥐더니 이후 네 시즌 내리 3할대 타율을 유지하며 골든글러브를 품에 안았다. 지난 시즌엔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처음으로 타격왕(타율 0.360)에 올랐다.

올해 들어선 약점으로 꼽히던 장타력마저 개선했다. 개인 최다 홈런(15개)을 때렸던 2020년의 장타율이 0.524였는데 올해는 0.553으로 높아졌다. 홈런은 시즌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12개(리그 공동 3위)를 쳤다. 올 시즌 평균 타구 속도는 커리어 최고인 시속 138.5㎞로, 지난 시즌보다 약 0.9㎞ 늘었다. 타구는 빠를수록 멀리 날아간다.

장타자는 스윙이 커서 삼진도 많이 당하기 마련이지만, 이정후는 삼진이 적다. 이번 시즌 삼진율은 데뷔 후 가장 낮은 4.9%이다. 리그 전체를 통틀어 가장 낮다. 선구안이 좋은 데다 공을 잘 맞히다 보니 삼진이 적을 수밖에 없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이정후의 빅리그 성공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다.

지난 시즌 타격왕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내년엔 홈런왕에 도전하겠다”며 농담처럼 말했던 이정후는 “아버지가 ‘하던 대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면 25~27세쯤 힘이 좋아지면서 홈런은 자연스럽게 많이 나올 것이다’ ‘홈런을 많이 치려고 무언가를 특별히 하지 말라’고 했다”면서 “아버지 말씀이 맞는 것 같다. 감사하죠”라고 말했다.

프로 6년 차에 접어든 이정후는 지난 4월 아버지가 보유했던 통산 최소 경기 900안타 기록을 깼고, 고(故) 장효조 전 삼성 감독(0.331)을 제치고 통산 타율 1위(당시 0.339·3000타석 기준)로 올라서는 등 ‘이종범의 아들’이 아닌 이정후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타율(0.347⋅1위)뿐 아니라 타점(51점· 공동 4위), 홈런(12개·공동 3위), 장타율(4위), OPS(0.976·2위) 등 각종 타격 부문에서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통산 974안타를 친 그는 올 시즌 중 역대 최연소·최소 경기 통산 1000안타라는 대기록 달성도 바라보고 있다. “프로 선수라면 항상 지난 시즌보다 잘하고 싶어해야 하고, 거기에 걸맞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이 성장의 밑거름이다.

이정후는 23일 열린 삼성과의 원정 경기에서도 중견수 겸 3번 타자로 선발 출장해 5타수 2안타 2타점으로 활약했다. 1회초 선제 결승 타점, 9회엔 쐐기 타점을 올리며 6대1 승리에 앞장섰다. 이정후는 리그에서 가장 많은 결승타(10개)를 치고 있다.

한화·LG전 등 세 경기 비로 취소

광주에선 KIA가 롯데에 7대4로 역전승했다. 한화-LG전(잠실), 두산-SSG전(인천), NC-KT전(수원)은 비 때문에 취소됐다. 이 경기들은 추후 재편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