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초 시작부터 더그아웃에서 교가를 부르던 충암고 선수들은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마운드로 뛰쳐나와 서로 끌어안고, 양동이에 담은 물을 뿌리며 환호했다. 두 달에 걸친 일정 끝에 처음 ‘청룡’을 품는 순간이었다.

충암고는 5일 충남 공주시립야구장에서 열린 제76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조선일보·스포츠조선·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공동 주최) 결승에서 군산상고를 7대3으로 눌렀다.

충암고 선수들이 청룡기 고교야구선수권 우승을 확정짓고 이영복 감독을 헹가래쳤다. 전국 대회에서 9차례 우승했지만 청룡기 트로피와는 인연이 없었던 충암고는 10번째 우승을 창단 첫 고교야구선수권 제패로 해내는 기쁨을 누렸다. /신현종 기자

청룡기 종전 최고 성적이 준우승(2014년)이었던 충암고는 1970년 야구부 창단 후 처음으로 최고 권위의 고교야구선수권 타이틀을 차지했다. 지난달 대통령배 우승에 이어 전국대회 2관왕을 이끈 이영복 충암고 감독은 “창단 이래 청룡기 우승이 없었는데 올해 드디어 이뤄내 무한한 영광”이라고 말했다.

대회 내내 충암고 마운드는 1-2선발 이주형(3학년)과 윤영철(2학년)이 지켰다. 둘은 결승전 승리도 합작했다. 1번 타자 겸 2루수 송승엽(3학년)은 1회말 선두 타자로 등장해 상대 선발 강민구(2학년)의 초구를 두들겨 오른쪽 담장을 넘겼다. 이 감독은 “타격이 좋지 않았던 송승엽이 첫 타석부터 홈런을 쳐서 선수들이 자신감을 가졌다”고 했다.

충암고는 2회에 볼 넷 4개를 얻어 밀어내기로 한 점을 추가했다. 2-1로 쫓기던 3회엔 우승원(2학년)의 적시 2루타와 상대 실책 등을 묶어 3점을 더 뽑았다. 5-1로 달아나며 승기를 잡는 순간이었다. 3루수 조현민, 좌익수 이충헌(이상 1학년)은 4타수 2안타로 타점 하나씩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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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암고는 류지현, 심재학, 조성환, 김주찬, 장성호 등 프로야구 스타들을 여럿 배출한 팀이다. 현재 이학주(삼성), 류지혁(KIA·이상 야수), 고우석(LG·투수) 등이 프로 무대에서 뛰고 있다. LG 류지현 감독은 “전국대회 2관왕을 일군 모교 후배들이 자랑스럽다.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고 했다.

충암고는 더그아웃 분위기가 활기찬 것으로 유명하다. 이영복 감독은 선수들에게 ‘야구보다 인성이 먼저’ ‘밝은 마음가짐으로 경기하라’고 강조한다. 조성환 한화 코치의 아들인 팀 주장 조영준(3학년)은 “항상 파이팅 넘치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라며 “개성 넘치는 선수들이 야구를 할 때만큼은 하나로 뭉쳐 집중력을 발휘한다”고 했다.

이번 고교야구선수권은 지난 7월 6일 서울 목동야구장과 신월야구장에서 막을 올렸으나 수도권 코로나 확산으로 6일 만에 중단됐다. 46일이 지난 지난달 27일 공주에서 무관중으로 재개됐다. 이날 현장을 찾은 학부모들은 경기장 밖 길가에 서서 분투하는 선수들을 응원했다.

청룡기 2회 우승(1982·1984년) 경력의 군산상고는 1993년 이후 28년 만에 결승에 올랐다. ‘역전의 명수’답게 9회초 1점을 뽑는 등 끈질기게 추격했지만 충암고의 마운드에 막혔다.

통산 5번째 준우승을 한 군산상고 선수들은 승자에게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냈다. 석수철 군산상고 감독은 경기 후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은 이영복 충암고 감독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축하했다. 군산상고 김동준(3학년)은 4회 솔로 홈런을 치고, 마운드에서도 2와 3분의 2이닝(2실점·1자책)을 책임져 감투상의 주인공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