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준(19·KT)은 올해 프로야구 유니폼을 입은 신인 110명 중 단연 찬란했다. 신인답지 않은 능구렁이 야구로 프로 마운드를 정복했다. 정규시즌 성적은 평균자책점 3.86에 13승(6패). 박종훈(SK)과 더불어 국내 선발 투수 최다승이자, 류현진(2006) 이후 14년 만에 고졸 신인 투수로 데뷔 첫해 두 자릿수 승리를 거뒀다. 소형준은 30일 열린 2020시즌 KBO리그 시상식 신인왕 투표에서 총점 511점을 얻어 2위 홍창기(LG·185점)를 너끈히 제치고 트로피를 탔다. 수상 소감도 신인답지 않았다. “MVP 트로피를 위해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경기도 수원KT위즈파크에서 만난 프로야구 KT의 투수 소형준. 2020시즌 신인왕을 거머쥔 그는“올 시즌은 다 잊었다”며 벌써 내년을 준비 중이다. /고운호 기자

◇베이징 키즈 소형준 “야구는 내 운명”

외아들 소형준은 ‘소 쿨(so cool)’한 가풍 속에서 자랐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은 올해 아들의 정규시즌 등판과 플레이오프 전 경기를 거실에서 맥주 한잔 하며 TV로 봤다. 온 집안이 달라붙어 자녀의 운동 뒷바라지를 하는 여느 선수 가족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그는 “시즌 마치고 집에 갔을 때도 부모님이 ‘수고했다’ 한마디 하셨다”며 “일희일비 안 하는 태도를 부모님께 배웠다”고 했다.

소형준은 팀의 창단 첫 가을 야구였던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 선발 투수로 나와 6과 3분의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4차전 구원투수로 등판해 결승 홈런을 헌납했지만 1실점으로 마무리했다. 그는 긴장 안 하는 비결을 “자기만의 것이 없을 때 긴장한다. ‘내 것만 하자’는 각오로 포수 미트만 바라보고 던지니까 안 떨렸다”고 했다. 올 시즌 가장 초조했던 순간은 팀의 정규시즌 막판 순위 싸움을 꼽았다. “더그아웃에서 두 손 모으고 ‘제발 제발’ 하면서 봤어요.”

소형준은 열혈 야구 팬이었던 아버지 손을 잡고 잠실 야구장에 자주 갔고, 여덟살부터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사진은 네 살 꼬마였던 소형준이 집에서 야구 배트를 들고 포즈를 취한 모습./소형준 가족 제공

야구 선수는 태어나기 전부터 될 운명이었다. 해태의 열혈 팬이었던 소철영(52)씨는 어릴 적 집안 반대로 못 이뤘던 야구 선수의 꿈을 아들이 태어나면 꼭 이루도록 하리라 결심했고,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2008년 리틀 야구단에 보냈다. 집에서 매일 팔굽혀펴기 60개와 섀도우 피칭 100개씩 시키면서 투구 기본기를 익히도록 했다. 소씨는 “형준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형들과 맞붙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내 아들이지만 기복 없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기특하다”고 말했다. 한국 야구가 올림픽 금메달을 딸 때 야구와 만난 소형준은 이제 도쿄올림픽 태극마크를 바라보고 있다.

◇팬들을 위한 ‘필 소 굿’ 될래요

소형준은 스스로가 천재형이 아닌 노력형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공부를 해도 잘했을 것 같다며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끈기 하나는 자신 있어서”라고 했다. 키도 노력으로 키웠다. 부모님 키(아버지 173cm, 어머니 160cm)는 큰 편이 아니지만 밤 9시 전에 잠들고 스트레칭을 자주 하는 습관으로 중학교 입학 때 163cm였던 키가 졸업 무렵엔 180cm대로 자랐다. 현재 공식 프로필 키는 189cm. 그는 “사실 187cm인데 숫자 ‘9’가 위압감을 주는 것 같아서 2cm 올렸다”고 멋쩍게 웃었다.

소형준은 "내년 시즌에도 호투해서 도쿄올림픽 야구 대표팀에 승선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때는 제가 어려서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정대현 선배님이 쿠바 타자들에게 병살타 유도하던 장면은 아직도 또렷해요."/고운호 기자

야구에 인생을 걸어봐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은 고등학교 1학년 겨울. “문득 ‘이대로만 하면 프로는 가겠다. 이왕이면 더 열심히 해서 인정받는 선수로 입단하자’ 생각했어요. 고교 때는 타석에 한 번도 안 서고 투구에만 집중했죠.” 그는 구종 5개(포심·투심·슬라이더·커브·체인지업)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KT 1차 지명을 받았다. 올여름엔 커터를 류현진의 영상으로 배워 추가했다. “제가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하거든요. 영상을 보면서 따라 하려고 하니까 되던데요.”

홈 경기 등판일에는 반드시 숙소 근처 중국요리집에서 시킨 볶음밥을 먹고 출근한다. “7월 말부터 볶음밥 먹고 되게 잘 던져서요. 이제는 가게 사장님도 저를 챙겨주세요.” 뭐든 잘 먹지만 당근과 가지는 “맛 없어서” 안 먹는다. 팬들이 ‘대형준’ ‘큰형준’ 등 여러 별명으로 부르지만 그가 가장 아끼는 별명은 ‘필 소 굿(feel so good)’이다. “제 투구를 보면서 기분 좋아지는 팬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소형준은 "주변에서 류현진 선배님과 저를 많이 비교하시는데, 류현진 선배님은 정말 엄청난 분이고 저는 아직 갈 길이 먼 신인"이라며 "선배님이 혹시 제 이름을 아신다면 저는 성공한 인생"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가장 자신있어하는 투심 그립을 선보였다./고운호 기자

소형준은 “올 시즌은 다 잊었다”며 벌써 내년을 준비한다. 그는 메이저리그 강속구 투수 워커 뷸러(LA 다저스)를 좋아한다며 “비시즌에 직구 스피드를 3~4km/h 끌어올리고 싶고, 확실한 결정구도 필요하다. 주무기인 투심과 체인지업은 계속 자신있게 던지겠다”고 했다.

‘괴물 신인’ 소형준은 원조 괴물 신인 류현진(33·토론토 블루제이스)과 자주 비교되곤 했다. 그는 류현진과 비교되는 소감을 해맑은 미소로 답했다. “류현진 선배님이 혹시 저를 아실까요? 그렇다면 저는 정말 인생 성공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