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미국·유럽, 중국·러시아 진영 대립 구도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에너지 전쟁이다. 두 진영 사이의 전선이 에너지 전선이라면, 이들이 모두 맞서 싸우는 외곽의 전선은 기후 위기와의 전선이다. 현재는 화석연료를 쓸 수도, 안 쓸 수도 없는 아주 곤란한 상황이다. 미국·유럽이 러시아 가스를 다른 가스로 대체하면 에너지 전쟁에서 무승부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기후 위기 전선에서 밀릴 것은 뻔하다. 에너지 안보를 지키면서 동시에 기후 위기 대응을 하기 위해 원자력이 중요해지는 배경이다. 특히 원자력 없이 간헐성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이를 보완할 가스 사용량도 같이 늘어나야 한다. 재생에너지를 늘리더라도 원자력 비율을 함께 늘려야 가스 의존을 줄일 수 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1.5℃ 특별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원자력 발전 설비 예측의 시나리오별 평균은 약 1200GW(기가와트)로 현재의 3배 정도다. 미국 에너지성도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2050년까지 미국에서 200GW의 신규 원전 설비를 지어야 한다고 밝혔다. 대형 원전 200기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원전 수요는 증가할 것이고, 이제 그 시장을 누가 차지하는지만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이 원자력 기술 패권을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우리도 탈원전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특히 원자력 발전소 수출은 단순한 제품·설비 수출이 아니라 그 국가에 대한 지정학적,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에 원전 기술 보유국들은 자국 원자력 기술의 수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미국은 무너진 원자력 생태계를 회복하기 위해 정부의 재정 및 제도 지원과 민간 자본의 참여를 결합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을 통해 계속 운전과 신규 원자력을 지원하고, SMR(소형 모듈 원전) 개발 및 상용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간 탈원전으로 주춤했던 우리나라도 원전 생태계를 강화하고 원전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작업을 하나씩 해나가고 있다. 건설이 중단됐던 신한울 3·4호기는 건설 재개를 위한 행정 절차를 마무리하고 본격 착공을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 건설 허가를 남겨둔 상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 3월 두산에너빌리티와 10년간 2조9000억원에 이르는 신한울 3·4호기 주 기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두산에너빌리티의 460여 중소 하도급 업체들에도 일감 발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또한 초격차 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술 혁신을 위해 미래 원전 개발, 수출 등에 필요한 기술 중심으로 향후 5년간 약 2조원을 기술 개발에 투자할 계획이다. 정부는 그간 이탈이 심했던 원자력 전문 인력의 유치와 인력 양성 정책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원자력 생태계 회복과 선진화를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본격 비상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한 차원 높은 증폭, 즉 곱하기가 필요하다. 만약 정부의 지원이 시들해진다면 원전 생태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는 게 시장의 냉정한 평가다. 우리나라 원전 산업이 한 차원 높이 비상하려면 정부의 지원이 민간의 참여로 폭발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국가 경제와 안보를 위해, 민간 차원에서는 회사의 미래를 위해 돈을 벌어다 줄 사업으로서 원자력이 필요하다.

그간 원자력 생태계라는 새가 정부의 역량이라는 한 날개로 날았다면, 이제 민간의 날개를 더해서 같이 날아야 한다. 정부의 투자에 민간이 대응하는 더하기로는 모자란다. 덧셈이 곱셈이 되려면 민간 시장이 가시화돼야 한다. 탄소 중립을 위해 모자라는 전력을 신규 원전으로 공급하고, 인허가 제도를 선진화해서 정부가 말려도 민간이 참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처럼 정부와 민간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면 원자력 생태계 활성화 지원은 폭발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