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 14m 아래 자리한 '위안의 공간', 콘솔레이션홀. 서소문밖 네거리에서 순교한 다섯 성인들의 유해가 안치된 곳이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서울역에서 서대문으로 가는 철길 인근에 지하 박물관이 있다. 위는 서소문역사공원이고, 내부는 종교적 박해와 순교의 역사를 품고 있는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다.

원래 이곳 서소문밖 네거리는 조선시대 국가의 공식 처형장이었다. 특히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이름이 밝혀진 천주교인만 100명 가까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그중 44명은 성인으로 추대됐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을 정도로 천주교에는 역사적인 장소로 꼽힌다.

중구는 이런 서소문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 2019년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을 개관했다. 과거 서소문 공원에는 지하 4층 규모의 공영주차장이 있었다. 이곳을 천주교 서울대교구와 중구가 전시장과 종교·추모 시설을 갖춘 박물관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다소 까다로운 설계에 완공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고 한다.

지하에 자리잡은 박물관 내부는 길게 나 있는 직선·곡선 형태의 길을 따라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전시와 예술 작품들을 돌아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곳곳에는 전시관, 도서관, 소성당, 강연장 등이 들어서 있다. 범종교적 신성함을 담아내기 위해 천주교 성지라면 떠오르는 십자가와 스테인드 글라스, 대리석 열주 등은 최대한 배제했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내 하늘광장. 주변을 둘러싼 적벽돌 벽과 우뚝 솟은 조형물은 자연히 시선을 하늘로 향하게 만든다. /중구

대표 공간은 땅속 14m 아래 자리잡은 콘솔레이션(위안, 위로)홀이다. 조명을 낮춰 어둠이 내려앉은 이곳엔 서소문밖 네거리에서 순교한 다섯 성인들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천장에서는 지상을 관통하는 한 줄기 빛만이 쏟아져 신성함과 엄숙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고개를 들면 파란 하늘을 마주할 수 있는 하늘광장은 콘솔레이션홀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가로·세로 각 33m, 높이 18m의 붉은 벽돌에 둘러싸인 광장은 ‘죽음에서 승화하는 공간’을 표방한다. 광장 한쪽에는 형장에서 순교해 성인의 반열에 오른 44인을 형상화해 침목(枕木)으로 만든 작품 ‘서 있는 사람들’이 하늘을 향해 우뚝 서있다.

한편 중구는 지난 17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 구민 30여명을 초대해 전시해설과 시설 탐방을 진행했다. 당시 김길성 구청장은 “이런 공간이 중구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너무 안타까워 이번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직장인이 많은 인근 특성을 고려해 점심시간 등을 활용한 관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월요일은 휴관한다. 관람 문의 02)3147-2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