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 종양내과 박준오 교수는 “오니바이드 병용요법의 급여화로 인해 의료진과 환자 모두 치료의 선택지가 늘었다”고 말했다. /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췌장암은 명백하게 나쁜 암이다. 조기 진단이 쉽지 않고 완치를 목적으로 수술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췌장의 조직·유전적 특성 때문에 치료제도 별로 없다. 임상시험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다. 지난해 전이성 췌장암에 있어서 2차 치료제로 활용되던 오니바이드(Onivyde) 병용요법이 급여화됐다. 췌장암 치료에 있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박준오 교수에게 물어봤다.

―췌장암 조기진단이 어려운 이유는?

“초기 증상들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췌장은 종양이 어느 정도 커질 때까지 증상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나타나도 배가 살살 아프다거나 살이 빠지는 등 소화기계 증상에 그친다. 게다가 일반적인 암 검진 프로그램에 CT 촬영이 포함되지 않는다. 초음파로는 후복막에 있는 췌장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배에 가스가 많이 차 있거나 비만이어서 지방층이 두꺼우면 더욱 안 보인다. 진단 도구들도 많지 않다. 이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췌장암 조기진단을 어렵게 만든다.”

―수술도 어렵나?

“보통 암은 1기, 2기, 3기, 4기로 병기를 구분한다. 췌장암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수술 가능 여부에 따라 나뉘기도 한다. 췌장암 환자 중 약 30%는 주요혈관 침범, 50%는 전이가 있어서 수술을 못 받는다. 수술 가능한 환자는 약 20%라고 볼 수 있다. 10명 중 2명만 완치를 목적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으니 예후가 나쁘다.”

―수술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종양과 주요 혈관과의 관계를 봐야 한다. 췌장 뒤쪽에는 대동맥에서 나오는 중요한 혈관들이 있다. 간으로 가는 혈관, 장으로 가는 혈관, 비장으로 가는 혈관 등이다. 아주 작은 종양이라도 혈관을 누르고 있거나 침범이 있으면 수술이 안 된다. 혈관을 자른 후 다시 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췌장암은 치료제도 많지 않다고 하던데?

“모든 암은 나쁘지만 종양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상대적으로 착한 암이 있다. 10년 생존율이 95%가 넘는 갑상선암이 대표적이다. 이런 암들은 항암제가 잘 들거나 종양이 천천히 자란다. 췌장암은 명백하게 나쁜 암이다. 유전자, 특히 돌연변이를 암으로 바꾸는 ‘K-Ras 유전자’가 90% 이상 나오기 때문. 또 종양 주변에 있는 세포들도 항암제가 잘 안 들게 만든다. 우리 몸에 흉터가 남는 것처럼 두꺼운 간질 조직들이 종양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췌장암 항암치료에는 어떤 옵션들이 있나?

“1980년대 개발된 젬시타빈(Gemcitabine)이 2000년대 초반까지 단독으로 적용돼왔다. 췌장암 환자들은 치료를 받지 않으면 생존기간이 약 4~5개월 정도였는데 젬시타빈은 6~7개월로 늘렸다. 당시엔 엄청난 발전이었다. 2000년대 초반엔 두 가지 중요한 치료 옵션이 등장한다. 하나는 ‘폴피리녹스(FOLFIRINOX)’로, 젬시타빈 없이 3가지 약물을 병용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납-파클리탁셀(Nab-paclitaxel)’로 젬시타빈과 아브락산(Abraxane)이라는 항암제를 병용하는 방법이다. 젬시타빈이 생존기간을 6~7개월로 늘린다면 두 요법은 각각 10~11개월, 12개월 정도로 늘린다. 현재까지 1차 표준치료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다음 옵션은 무엇인가?

“전이성 췌장암 환자가 젬시타빈 기반 치료에 실패하면 오니바이드 병용요법을 고려할 수 있다. 오니바이드는 폴피리녹스 약제 중 이리노테칸(irinotecan)을 나노 공학으로 ‘리포좀화’한 항암제다. 즉, 이리노테칸이 종양에 잘 들어가게 만든 것인데 플루오로우라실(5-FU), 류코보린(leucovorin)과 함께 사용된다. 대규모 3상 임상시험 결과에 따르면, 2차 치료로 오니바이드 병용요법을 시행하면 6개월 정도의 생존기간을 기대할 수 있다.”

―부작용은 없나

“1차 치료에 사용하는 폴피리녹스나 젬시타빈과 아브락산 병용요법의 가장 심한 부작용은 말초신경염이다. 걷기나 숟가락질부터 문제가 생긴다. 일상생활에 장애를 초래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말초신경염은 피해가 누적되는데 치료를 장기간 이어가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오니바이드는 설사나 백혈구 수치 감소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일부 골수가 억압되는 경우도 있지만 피해가 누적되는 부작용들은 많지 않다. 일상생활에 장애를 초래하지 않아 장기적으로 쓰는 환자들이 많다.”

―지난해 오니바이드 병용요법이 급여를 적용받았다. 어떤 의미가 있었나?

“의료진과 환자 모두에게 선택지가 늘었다. 폴피리녹스 요법은 비용이 많이 들지 않지만 아브락산, 오니바이드는 꽤 비싼 신약이었다. 의료진 입장에선 가격과 상관없이 좋은 약을 쓰고 싶지만 환자가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해 해당 약물로 치료를 이어가지 않겠다고 하면 많이 안타깝다. 오니바이드 급여화로 환자의 치료 접근성이 좋아졌고 전반적으로 환자 생존기간도 나아졌다. 비로소 1차 요법, 2차 요법 등 췌장암 항암치료 라인업이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미국 암 연구소에서 10년 단위로 암 발생과 암 생존율이 어떻게 되는지 분석한 그래프가 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생존율은 채 10%를 못 넘긴다. 가장 큰 이유는 수술 환자가 너무 적다는 것. 생존기간이 이전보다 길어진 건 사실이지만 5년으로 따져보면 유의미하지 않다.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치료제 개발이 절실하다.”

―췌장암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췌장암은 연구가 굉장히 활발한 암 중 하나다. 신약 임상시험의 기회가 많으므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본인에게는 물론 다음에 진단받는 사람에게도 크게 기여하는 방법일 수 있다. 또 온라인에서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고 오히려 해를 입힐 수 있는 정보들이 너무 많다.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 너무 믿지 말고, 담당 종양내과 의사를 통해 입증된 치료를 이어가는 것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