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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의료봉사를 하면서 맺은 여러 인연(因緣)이 있다. 좋은 추억이 많지만, 가슴 아픈 사연도 떠오른다. 12~13년 전의 일이다. 대학병원에 근무할 때 대형 버스를 구입해 의료봉사용으로 개조했다. 아이들 방학 때 직접 운전하며 전국을 돌았고, 가족 모두가 의료봉사에 참여했다. 그러던 중 바닷가에 그림 같은 펜션을 짓고 사는 한 부부를 알게 됐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손수 지었다는 남편과 매일 바쁜 일정에도 배려 넘치는 아내의 삶에서는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평범하다고 볼 수 없는 특별함이 여기저기서 배어 나왔다.

이 남편은 척추협착증과 고관절염으로 나에게 두세 번 치료를 받은 환자였다. 그러고 한참이 지난 수년 전, 그가 하지마비를 호소하며 병원에 다시 찾아왔다. 목과 허리 모두 사진으로 볼 때 심각한 척추협착증이었다. 걷는 능력이 하루가 다르게 약해졌고, 이처럼 병이 빨리 진행된다면 수술하는 것이 정답이어서 “수술을 하시되, 최소한의 범위로 하시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과 함께 의사도 소개했다. 하지만 여러 의사에게 자문하느라 시간은 더 흘렀고, 단숨에 수술하기 힘든 상황이 된 채 수개월째 증세가 정체됐다. 협착증 증상이 정체되면 보통 더 나빠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환자는 매우 신중했다. 돌이켜보면 수술을 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쓴 모양이다. 고민 끝에 그는 나에게 “이제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애초에 수술을 권했지만, 이미 증상이 정체된 상황이라면 지금 새삼스럽게 수술을 할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증상이 정체된 상황에서는 수술한다고 딱히 더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수술 전과 후, 수많은 환자들의 다양한 사례를 보아온 나는 이 환자의 현재 상황상 수술한다고 크게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후유증이 예상될 뿐 아니라 수개월 동안 걷지 못하면서 오히려 증상이 더욱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혹시 수술이 잘 된다고 해도 큰 이득이 없으리라 추측됐다.

그러나 결국 환자는 고민 끝에 수술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수술 후 환자의 걷는 능력이 약해졌고, 이윽고 보행이 불가능해지면서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환자는 키가 크고 약간 구부정한 자세였다. 이런 체형에 치밀하고 꼼꼼한 성격이라면 보통 걸음걸이가 조심스럽다. 골반을 내밀며 힘차게 걷기보다는, 보통 다리를 먼저 들어 키에 비해 작은 보폭으로 팔자걸음을 걷는다. 이럴 때 허리 하부와 골반의 운동은 제한된다. 논문에 근거하면 허리 하부의 작은 근육들과 골반 근육들의 운동이 제한되면 허리의 통증이 더 심해진다. 지금 다시 처음 건강하던 그를 만났던 때로 돌아간다면, 잘못된 생활방식과 걸음걸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교정해 줄 것 같다. 그랬다면 이런 일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이상적인 걸음걸이에서는 다리 근육보다 배의 근육이 먼저 움직인다. 이럴 때는 골반이 충분히 움직이면서 다열근(多裂筋·요추 안 깊숙한 부위에 있는 아주 작은 근육들로, 척추의 세밀한 운동을 조절한다) 등 허리 깊숙이 있는 근육들과 골반을 받치는 근육들이 함께 어우러져 걸음걸이가 된다. 이때 골반이나 배의 근육들은 호흡근으로서도 중요하다. 걸을 때 어떻게 호흡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의대녀’ 2020년 7월 3일 ‘흔들리는 허리, 근본 원인은 뇌에 있다?’ 참고).

만성적으로 허리가 아픈 사람들은 걸을 때 다리 근육을 먼저 쓴다. 반대로 허리가 아프지 않은 사람은 배의 근육을 먼저 쓰고, 걸을 때 골반을 충분히 움직인다. 이런 내용이 담긴 논문 또한 이미 정평(定評)이 나 있다. 숨을 들이마신 상태의 가슴 크기를 내쉴 때도 유지해야 건강한 호흡근을 지킬 수 있다. 이런 습관은 허리뿐 아니라 목의 커브(curve)를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목의 커브와 긴장도는 흉추와 가슴의 움직임에 좌우된다(‘의대녀’ 2020년 5월 29일 ‘스몸비? 왜 자꾸 목이 아플까?’ 참고).

골반의 움직임은 건강한 걸음걸이의 필수조건이다. 보폭을 크게 하려면 골반을 움직여야만 한다. 골반이 다리보다 먼저 움직이는 느낌으로, 마치 런웨이의 모델처럼 걷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의대녀’ 2020년 6월 26일 ‘100세 시대 허리, 어떻게 덜 다치고 오래 쓸 수 있을까?’ 참고).

걸음걸이를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꾸준히 연습하면 가능하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그 전에 포기한다. 3개월 동안 같은 습관을 유지해야만 뇌의 회로까지 바꿀 수 있다. 일단 뇌의 회로가 바뀌면 새로운 걸음걸이가 생활에 자리 잡고, 그래야만 통증도 훨씬 줄어들어 삶까지 활기차게 변할 것이다. 여기에 매일 하는 뇌 건강 운동(‘의대녀’ 2020년 7월 3일 ‘흔들리는 허리, 근본 원인은 뇌에 있다?’ 참고)을 더하면 훨씬 활력이 넘치게 된다.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척추와 뇌의 병에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