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서울 강동구에 사는 김현미(가명·31)씨는 다음 달 부산으로 휴가를 떠날 계획이다. 생애 첫 서핑에 도전하기로 한 김씨는 ‘메타버스(metaverse)’ 서비스에 접속해 송정 해수욕장 서핑 빌리지를 둘러봤다. ‘메타버스’는 초월·가공을 뜻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세계를 혼합한 공간’을 말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을 떠올리면 된다. 김씨는 서핑복 판매점에서 아바타에 입힐 예쁜 서핑복을 산 뒤 오프라인 판매점에 전화해 자신이 입을 옷도 똑같은 걸로 주문했다. 광안리와 서면, 남포동 등 메타버스에 있는 다른 관광지도 둘러보고 가 볼만한 곳을 메모했다.

2019년 11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전시장에서 열렸던 ‘2019지스타’에 관람객들이 몰려들어 북적대고 있다. /부산시 제공

영화, 게임, 웹툰, VR(가상현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메타버스…. 영화로 시작된 부산의 ‘영상 콘텐츠 산업’이 날로 진화하고 있다. VR, AI(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에 지역 문화의 옷을 입히고 더해 지역의 간판 ‘신산업’으로 발돋움 중이다. 지난 2011년 설립된 부산 해운대구 ‘트리노드’사는 ‘포코팡’이란 모바일 게임으로 거의 세계급 기업으로 성장했다. 연매출 500억원이 넘고 직원만 140여명에 이른다.

‘에이스온라인’, ‘DK온라인’ 등 모바일 게임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마상소프트’사는 매출 100억원이 넘는다. 2015년 문을 연 스타트업인 ‘펏스원’사는 ‘무한의 계단’이란 게임으로 요즘 급성장 중이다. 올해 매출 100억원 달성이 예상되고 있을 정도다. ‘파크이에스엠’사는 ‘오퍼레이션7 레볼루션’이란 게임을 출시해 일본에서 15만 다운로드의 실적을 올렸고, 일본 ‘소니’ 측에 VR콘텐츠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처럼 부산의 게임업계는 폭풍 성장 중이다. 지난 2009년 24개 회사에 불과했으나 최근 127개로 5.3배 늘어났다. 직원들도 같은 기간 242명에서 1330명으로 불었다. 총 매출액 역시 129억에서 10배가 넘는 1335억원으로 급증했다.

지난 2019년 9월 개최된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개막식. /부산시 제공

게임만 아니다. 부산의 ‘웹툰’산업도 강세다. 예전 국내 만화계를 주름잡았던 부산 출신 박봉성·홍은영 작가의 전통을 잇는 신진기예들이 많다. ‘강철비’의 김태건, ‘이웃집 꽃미남’의 유현숙, ‘독고’의 오영석, ‘샤크’의 김우섭, ‘85년생’의 김혜원, ‘마왕의 딸로 태어났습니다’의 구은민…. 이들 작가의 웹툰은 영화나 TV드라마, 웹무비 등으로 만들어지거나 미국·프랑스·일본·태국·중국 등지로 수출되고 있다.

‘51구역’, ‘진엔터테인먼트’ 등 웹툰 기업들도 활약 중이다. 이들 회사는 작가들이 집단으로 스튜디오를 만들어 다양한 작품을 창작하거나 작가들을 발굴·관리하면서 국내외 플랫폼에 작품을 유통하는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부산에 게임, 웹툰산업만 있는 게 아니다. 관련 국내외 이벤트들도 끊이지 않는다. ‘지스타’는 오는 2028년까지 부산에서 열리기로 돼 있다. 또 아시아 최대규모 인디게임행사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이 2015년부터 열리고 있다. ‘부산웹툰페스티벌’도 지난 2017년부터 개최 중이다. 부산시는 이 행사를 ‘부산글로벌웹툰페스티벌’로 키을 계획이다. 김도남 영상콘텐츠산업과장은 “해운대 센텀시티에 게임콘텐츠 집적시설인 ‘게임융복합스페이스’를 설립하고, 1000억원의 게임콘텐츠 펀드를 조성하는 등 지역 게임·웹툰산업을 지속적으로 육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영화·영상 산업에 대한 투자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소비자 선호도가 더 높아진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OTT매체들과 연계한 콘텐츠로 그 분야를 확대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출품 이력이 있는 지역 작품 7편을 선정해 선보이는 ‘부산영화기획전’을 열고, OTT 매체에서 인기 있는 장편 다큐멘터리 분야의 작품 3편을 선정해 최대 1000만원의 기획 개발비를 지원한다.

‘메타버스’ 등 첨단 분야 콘텐츠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부산시는 내년부터 송정 메타버스 서핑 빌리지 구축을 시작으로 유명 관광지, 부산시청 민원서비스에도 메타버스를 적용할 계획이다. 김기환 부산시 문화체육국장은 “바다·산·강이 어우러져 있고 항구라는 도시 특성상 개방·활동성이 풍부한 부산의 문화적 특성이 VR·메타버스· AI 등 첨단 ICT기술과 만나 미래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고 있다”며 “장래 부산은 영화·드라마·게임·웹툰 등이 융합한 ‘불리우드(부산+할리우드)’라 불리게 될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