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골이나 항문 주위부터 두 다리 앞쪽까지 통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종종 있다. 이런 통증은 임신 중에 흔하게 나타나지만 출산 후 대부분 저절로 사라진다. 그러나 의외로 임신과 상관없이 증상이 발생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십수 년 전 미국에 거주하는 여성 환자가 사타구니 및 다리 앞쪽 통증과 소변을 참지 못하는 증상으로 내원(來院)했다. 출산과 관련된 이 원인 모를 통증에 대해 미국에서는 ‘치골결합부위 기능장애’로 진단받았다. 그러나 치료를 해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더 악화됐다. 할 수 없이 한국에 와서 이런저런 치료를 받아봤지만 역시 개선되지 않았다. 점점 통증 부위는 넓어져 갔다. 골반 앞뒤 통증이 심할 뿐 아니라 갑자기 다리 힘이 빠지고 골반 앞까지 저려 걷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5년 이상 원인 모를 통증에 시달리다 보니 일상생활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미국이란 나라의 의료가 발전한 듯 싶어도, 만성통증에는 제대로 된 진단시스템이 없으니 새삼 안타까웠다.

‘치골결합부위 기능장애’는 임신 중에 골반이 넓어지면서 치골결합부위 균형이 깨져 나타난다. 콕콕 찌르는 듯한 음부 통증, 항문 주위 통증, 골반 앞뒤 통증 등을 동반한다. 이 장애가 나타나면 골반뿐 아니라 다리 앞쪽 근육도 점점 감소한다. 출산 후 저절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지만 일부는 만성 통증으로 남을 수 있다. 남성들도 유사한 증상으로 고통받는 것을 보면 꼭 임신 때문에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상당수는 원인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통증 속에 지내고 있다.

이 환자의 경우 임신과 출산 당시의 정황은 알 수 없었지만, 내원했을 때 치골교합부위를 눌러보니 압통은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치골교합부위의 불안정도 사진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①은밀한 부위의 고통을 초래하는 ‘치골결합부위 기능장애’는 해결하지 않으면 만성통증으로 남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②우리 몸의 신경총은 신경들이 서로 복잡하게 연결돼,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신경총이 긴장하면 여기에 연결된 여러 부위에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안강병원 제공

허리 쪽부터 척추를 하나씩 눌러보니 분명하게 압통이 느껴지는 부위는 세 곳이었다. ▲상부 허리 ▲하부 허리 ▲골반 궁둥뼈의 음부신경이 지나는 터널이었다.

우리 몸에는 신경총이라는 것이 있다. 신경들이 서로 복잡하게 연결돼,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경총이 긴장하면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사진2〉 상완신경총 부분에 감작(感作)이 오면 어깨·팔·손에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전기가 오듯 찌릿한 통증이나 감각 저하, 근육 감소 등이 일어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래에 있는 요천추신경총에 감작이 오면 골반·회음부·항문부터 다리·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요천추총병증(lumbosacral plexopathy)이라 한다. 원인은 치골교합부위일 수 있지만, 허리와 관련된 병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필자는 두 가지 원인을 염두에 두고 치료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신경반사가 잘 일어나는 허리와 음부신경이 지나는 궁둥뼈에 자극을 주며 치료했더니 통증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3개월 후에는 증상이 절반 정도 사라져 일상생활도 가능한 상태가 됐다.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수개월 후 다시 내원해 두세 차례 치료받은 이 환자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재발(再發)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몇 개월 전에는 다른 여성 환자가 항문과 회음부 통증을 호소하며 내원했다. 이 부위 통증은 생각보다 흔하다. 이럴 때, 내과적인 이상이 없다는 가정 하에 이학적 검사(시진·촉진·타진·청진 등으로 환자의 이상 유무를 조사)로 신경이 특히 과민해진 부위나 허리와의 연관성을 찾으면 치료의 실마리가 의외로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연관성이 없으면 치료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이런 경우 ‘심리적인 원인’으로 치부하지만, 사실은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 환자의 경우 다행스럽게 회음부 신경에서 과민해진 부위가 발견됐다. 몇 년 동안 지속된 병이지만 단 한 번에 증상을 없앨 수 있었다. 아직은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까지는 매우 성공적이다.

만성통증 중에서 진단이 가장 어려운 부분은 ‘골반’이다. 우선 이 부위는 산부인과와 비뇨기과 영역이 겹친다. 신경분포가 복잡하고 증상도 다양하다. 하지만 이 부위는 신경반사회로가 잘 발달되어 자극치료나 운동치료에 잘 반응하기도 한다.

은밀한 부위라고 쉬쉬할 것이 아니다. ‘모든 질병에는 반드시 치료법이 있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검사와 치료에 임하는 것이 좋다.

의대녀: 의사와 대화하는 여자’ 유튜브 채널
“평소 발 저림 지속됐다면 발목터널증후군 가능성 높아”

TV조선 이진희 아나운서와 통증 전문가 안강 원장님이 함께하는 ‘의사와 대화하는 여자(의대녀)’가 발목 문제를 다룹니다. 평소 발 저림이 지속되거나 발목의 운동 범위가 많이 줄었다면 허리 문제 또는 발목터널증후군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족근관증후군 자가진단법과 증상을 완화하는 스트레칭법까지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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