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다시 한 번, 이 불확실한 세계의 어딘가에서 너를 만날 수 있다면, 그때는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무라카미 하루키, 반딧불이中)

14일 밤 서귀포시 중산간 지역에 반딧불이들이 짝짓기 상대를 찾아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며 어두운 숲길을 밝히고 있다. /제주일보 고봉수 기자

하루키의 명작 ‘노르웨이 숲’의 모태라 할 수 있는 단편소설 ‘반딧불이’에서 주인공은 반짝이는 반딧불이를 날려보내며 죽은 친구를 회상한다. 망자(亡者)의 영혼을 상징하는 촛불을 작은 배에 넣어 강물로 떠내려 보내는 식으로 위령제를 지내는 일본 풍습을 본뜬 듯하다. 하루키는 노란 빛으로 한 밤을 물들이는 반딧불이의 신비한 느낌을 통해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려는 것이다.

‘개똥벌레’라고도 불리는 반딧불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한 곤충이었다. 반딧불이를 모아 그 빛으로 공부를 한다는 중국 고사성어 형설지공(螢雪之功)의 ‘형’이 개똥벌레를 뜻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산업화로 인한 자연파괴로 반딧불이의 애벌레 먹이인 다슬기, 조개류가 사라지면서 개체수가 크게 줄었다. 4월쯤 부화해서 애벌레, 번데기 과정을 거쳐 6월쯤 어른벌레가 되고 대략 2주정도 살다 죽는다. 크기는 1~2㎝에 불과하다.

반딧불이가 내는 빛은 ‘루시페린’이라는 체내 발광(發光)물질이 체내 효소인 ‘루시페라아제’, 산소와 반응해 일어난다. 반딧불이 한 마리의 밝기는 약 3룩스 정도로(사무실은 평균 500룩스) 대략 200마리를 모으면 책이나 신문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어른벌레뿐만 아니라 알, 애벌레, 번데기도 빛을 낸다.

이런 화학적 반응을 통한 발광은 ‘짝짓기’를 위해서이다. 수컷은 배위에 두 줄로, 암컷은 한 줄로 빛을 낸다. 암수 모두 날 수 있지만, 보통 수컷들이 몸집이 작고, 암컷들이 커서 날아다니는 것은 수컷이 더 많다. 반딧불이들의 비행(飛行)이 보기에는 아름다워도 실은 후세를 위한 필사적인 몸짓인 셈이다.

반딧불이는 이제 흔히 보기 힘든 곤충이 됐지만, 무주 일대와 제주에서는 여전히 관찰이 가능하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반딧불이 보호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축제도 열다가 코로나 사태로 중단한 바 있다. 그로 인해 반딧불이들이 더 잘 보존되게 된 것은 아이러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