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농촌진흥청 연구진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수입 업체 창고에서 CA 컨테이너를 활용해 수출한 국산 ‘원황배’ 품질을 확인하고 있다. CA 컨테이너는 산소와 이산화탄소 농도를 조절해 농산물의 호흡을 억제하고 생리 대사를 최소화해 신선도를 유지한다. 항공 운송 대비 30% 수준이라 물류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농촌진흥청 제공

농촌진흥청이 주도하는 ‘K-농산물’의 무대가 넓어지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동양배와 서양배를 교배해 만든 배 ‘그린시스’는 작년 11월 세계적인 식당 안내서 ‘미쉐린 가이드’에 실린 싱가포르 유명 식당 두 곳의 식탁에 올랐다. 별 2개를 받은 ‘클라우드 스트리트’, 1개를 받은 ‘메타 레스토랑’의 셰프들은 평균 당도 12.3브릭스에 과즙이 풍부하고 시원한 맛이 특징인 이 품종에 “과즙이 많고 식감이 딱딱하지 않아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후식 메뉴에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했다.

프리미엄 과일 전략으로 수출시장을 개척한 ‘샤인머스캣’ 포도는 동남아시장에서 송이당 10만원대 가격으로 일본산보다 비싸게 판매되고, 겨울 제철을 맞은 딸기는 ‘킹스베리’ 같은 품종은 인도네시아 등 국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020년 대한민국 우수 품종 대상(대통령상)을 받은 ‘홍산’ 마늘과 껍질째 먹을 수 있는 ‘홍주씨들리스’ 포도는 2022년 홍콩과 베트남에 각각 시범 수출되면서 시장을 넓히고 있다.

K-농산물 인기에 따라 시장도 커지고 있다. 작년 약 88억달러 수출 실적을 올린 우리 농산물은 올해 수출 100억달러 달성과 오는 2027년 150억달러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농업인 소득 증대뿐 아니라 국내 시장 수급이 불안정한 마늘 같은 경우 과잉 공급 문제를 수출로 해결하는 것도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농산물 특성상 불가피한 짧은 보존 기간이다. 항공 운송은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지만 비싼 운송 비용이 제약이다. 상대적으로 비용 부담이 적은 선박 수출은 신선도 저하가 걱정이다. 농촌진흥청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과일·채소의 물러짐이나 부패를 막을 수 있는 신선도 유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기술은 ‘CA(Controlled Atmosphere·환경 기체 조절 장치) 컨테이너’다. 이 컨테이너는 산소와 이산화탄소 농도를 조절해 농산물의 호흡을 억제하고 생리 대사를 최소화해 신선도를 유지한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처럼 농산물의 생명 활동을 최소화해 운송 기간 동안 노화를 지연시키는 원리다.

이전까지 한 컨테이너에 여러 농산물을 섞어 수출하면서 품질이 저하되는 문제도 해결했다. 농촌진흥청은 딸기, 참외, 새송이 등 주요 수출 품목 8종을 대상으로 최상의 신선도를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는 ‘CA 컨테이너’ 조건 설정 실험을 진행했다. 딸기의 부패율은 90%에서 40%로 줄어들었고, 참외는 부패율과 손실률이 각각 50%, 40% 감소하였다. 새송이는 물러짐 억제로 8주 이상 품질이 유지됐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딸기, 샤인머스켓, 고구마 등 5종의 품목을 홍콩까지 2주 동안 동시에 운송해도 모든 품목의 품질이 우수하게 유지됐고, 물류비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현재 홍콩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위주 활용에서 유럽, 미국 등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 12월에는 CA 컨테이너를 활용해 처음으로 미국과 캐나다에 제주감귤을 운송했다. 농촌진흥청 기술협력국 권택윤 국장은 “자유무역협정(FTA) 확대로 농산물 수입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국산 농산물의 수출은 내수시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농업인의 소득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하다”며 “수출 물류 콜드체인 확충과 연계한 CA 컨테이너 선박 수출 기술 보급으로 해외 시장에서 국산 농산물의 품질 위상을 높이고 수출 확대에도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농촌진흥청은 올해 신기술 실증 사업을 통해 경남 진주시와 경북 성주군의 수출 거점 2곳에 CA 활용 기술이 정착되도록 하고 2024년까지 주요 수출 품목 12종에 대해 CA 가이드라인을 구축할 계획이다. 오는 2024년 WTO(세계무역기구) 합의에 따라 그간 지원 가능했던 수출 물류지 지원이 중단되는 것도 이슈다. 이에 조재호 농촌진흥청 청장은 신년사를 통해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는 CA 컨테이너를 활용한 장거리 선박 수출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