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전(현지 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유모차를 끄는 젊은 커플,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출동한 가족, 스케치북을 든 학생들이 마스크를 쓰고 줄지어 들어왔다. 입장하자마자 두 팔을 뻗어 환호하는 이도 있었다.

이날 미 최대 미술관이자 뉴욕의 랜드마크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하 메트)이 지난 3월 코로나 창궐로 인해 무기한 휴관한 지 5개월 반 만에 다시 일반 관객에게 문을 열었다. 1870년 설립된 메트가 사흘 이상 휴관한 건 세계대전 때도 없던 일이다.

코로나 휴관 후 5개월 반 만에 문을 연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29일 사람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뉴욕시에선 그 5개월간 코로나로 2만4000여 명이 숨졌다. 이 세계 경제·문화 수도에서 500여 개 갤러리와 뮤지컬 극장, 유명 식당이 문을 닫고, 대기업과 금융사 인력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러나 엄격한 봉쇄 덕에 8월 들어 코로나 검사 대비 확진율이 1% 미만으로 떨어졌다. 일일 확진자는 최대 1만800명에서 600여 명으로 줄었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일상을 재개하고 있는데 메트 개관도 그중 하나다. 이날 만난 셜리라는 70대 여성은 "그간 외출도 제대로 못 했는데, 그리스·로마 시대 조각 사이를 거닐다보니 유럽 여행 온 기분"이라고 했다. 두 아이 손을 잡고 온 40대 남성은 "예술 잘 모르지만 이제야 삶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고 했다.

메트는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라 기존 일일 방문객(5만6000명)의 25%인 1만4000명으로 입장 인원을 제한했다. 관람객끼리 마주치지 않도록 동선을 분리했고, 종이 안내문과 음수대, 오디오 가이드도 없앴다. 그래도 네덜란드 화가 반 고흐나 프랑스 조각가 로댕 전시실 등엔 거리 두기가 무색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메트와 함께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도 재개장에 돌입했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에 예술이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3월 이래 미 전역의 박물관·미술관 3곳 중 1곳이 영구 폐관됐고 인력 40%가 감원됐다. 메트도 1억5000만달러(1774억원) 적자를 감당 못 해 직원 20%를 해고했다.

그래도 숨통이 트인 건 반가운 일. 메트의 맥스 홀렌 관장은 "코로나로 고통받던 이들이 이곳에서 휴식과 위안을 얻어갔으면 좋겠다"며 "그게 미술관의 쓸모, 예술의 효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