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식당에서 파는 불고기는 많이 달죠? 여기는 그렇지 않아요. 달지도 짜지도 않아요.”

자박자박한 국물 위에서 눌어붙을 듯 말 듯 익어가는 불고기를 뒤집으면서 이주익(64) SCS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불고기의 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음식 칼럼니스트도, 요리 연구가도 아니며, 요리사는 더더욱 아니다. 이 대표는 '만추' '묵공' 등을 제작한 영화인.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담근 명란 젓갈을 먹으며 '맛있는 것은 왜 맛있을까'라고 고민하던 그는 합작 영화를 제작해온 덕분에 러시아 시베리아부터 남미 팜파스 초원까지 다니며 먹는 경험을 했다. 음식에 대한 조예가 알려져 교보생명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에 음식에 관한 글을 한 달에 한 번씩 연재했다. 그때 쓴 칼럼을 엮어서 '불현듯, 영화의 맛'(계단)을 펴냈다. 그가 자주 들른다는 서울 사당동의 한 불고깃집에서 만났다.

이주익 SCS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불판에 불고기를 올리면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 영화로 ‘음식남녀’와 ‘바베트의 만찬’을 꼽았다. 둘 다 그가 펴낸 ‘불현듯, 영화의 맛’에서 다룬 작품이다.

―음식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나.

"어머니 때문이다. 외가는 6·25전쟁 전까지 재력가였고, 어머니는 대학을 나온 신여성이었다. 좋은 재료로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야 한다고 배우셨다. 일본에서 스시를 제일 잘 만들면 그게 세계 1등일 테고, 한국에서 김치를 제일 잘 만들면 그게 세계 1등일 것이다. 속초에 살던 어머니가 담근 명란 젓갈은 한국 최고이기 때문에 세계에서 1등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런 걸 먹으면서 맛있는 음식은 왜 맛있는지 생각할 수밖에."

―미식(美食)은 여유 있는 사람이나 한다는 편견이 있다. 당신도 영화를 만드느라 해외를 다니며 좋은 친구를 사귄 덕분에 미식을 접한 것 아닌가.

"문득 '미식이 죄가 아닌가'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여전히 굶는 사람이 있는 세상이니까. 하지만 미식은 단지 맛있는 음식을 탐하는 게 아니다. 진정 맛있는 음식은 결국 몸에도 좋은 건강한 음식이다. 우리가 의식을 못 할 뿐이지,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하는 것은 건강과 장수를 바라는 본능과도 연결됐다. 그래서 미식을 하면 건강하게 살고, 인생에 감사하며 살게 된다.

―음식과 관련된 영화는 한 편도 없다.

"영화 '만추'에서 식사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내 맘에 들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 음식을 주제로 한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 처음에는 한국 음식이 인기라는 얘기가 '국뽕'인 줄 알았는데, K팝과 한국 드라마가 해외에서 인기를 얻는 걸 보고 마음을 바꿨다. 하나의 문화로 온전히 받아들이더라. 그래서 한국 음식을 제대로 보여주는 게 먹힐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표는 그동안 해외와의 합작 영화를 주로 제작했다. '만추'는 한미(韓美) 합작이었고, '칠검' '묵공'은 중국, 일본의 영화인들과, '워리어스 웨이'는 미국, 뉴질랜드의 영화인들과 함께 만들었다. 한국외국어대학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통번역대학원 1기로 들어가 한·중·영 통역을 공부했다. 대학 때 부전공으로 스페인어를,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일본에서 유학까지 해서 그가 유창하게 할 줄 아는 외국어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 다섯 가지다.

―전공은 중국어인데 영어도 잘했다.

"대학 때 '대부'를 보고 완전히 반했는데, 영화 속 대사보다 자막이 너무 짧았다. 그래서 원작 소설을 사다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책과 대조했다. 영화 때문에 영어를 잘하게 됐다. 통번역대학원 들어가기 전부터 방송국에서 나한테 영화 번역 일을 맡겼다. 그땐 대본이 없는 영화도 수입돼서 직접 들으면서 자막을 만들기도 했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게 왜 좋았나.

"음식을 접할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하나의 문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선지 음식과 외국어 덕분에 쌓은 해외 인맥이 좀 있다. 존재감이 별로 없는 동양인 취급을 하다가 프랑스 식당에서 불어로 와인을 주문하거나 중국 식당에서 중국어로 음식 얘기를 꺼내면 사람들이 태도를 바꾼다. 밥 한번 먹으면 친해져있는 경우가 많다."

―가장 맛있는 음식은 뭔가.

“어머니의 명란 젓갈. 뻔한 말 같지만 많이 먹어보면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 맛있고, 몸에도 좋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선지 딸은 내가 만든 짬뽕이 제일 맛있는 짬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