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21일 자신이 맡고 있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을 사퇴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전 목사와 한기총의 1년 7개월에 걸친 인연이 끝나게 됐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전 목사는 지난 2019년 1월말 한기총 대표회장에 선출돼 올해초 재선됐으나 지난 5월 법원에 의해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서 현실적으로 대표회장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 7개월이었지만 한기총 대표회장직은 전광훈 목사가 개신교계 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뜨거운 인물’로 발돋움한 강력한 발판이었다.

한기총은 1989년 한국 개신교계의 ‘어른’이었던 고(故) 한경직 목사를 비롯한 보수적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중심이 돼 창립된 연합기관이다. 창립 이후 보수 개신교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한국 개신교 최대 단체로 떠올랐다. 대통령 초청 종교지도자 간담회에도 단골로 초청받았다. 이런 위상 때문에 2000년대 들어 대표회장 선거가 과열되기도 했다. 2010년 이후 한기총은 대표회장 선거를 둘러싼 금권선거 시비와 이단 교단의 가입 논란이 불거지면서 예장합동과 예장통합 등 주요교단들이 잇따라 이탈했다. 여기에 더해 2012년 한국교회연합(한교연), 2017년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등 한기총을 대체하는 개신교계 연합기관들이 설립되면서 한기총은 ‘문패만 남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위상이 떨어졌다. 그러나 교계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개신교인이나 일반인들에게 한기총은 여전히 개신교계를 대표하는 연합기관의 이미지가 남아있는 상태였다.

전광훈 목사는 1983년 서울 답십리에 사랑제일교회를 개척해 1995년 현재의 성북구 장위동으로 이전해 현재까지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 그는 2000년대 들어 “청교도영성훈련을 통해 민족복음화를 이루겠다”며 청교도영성훈련원장으로 전국에서 집회를 개최하면서 개신교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이 단체를 통해 ‘북핵 폐기 국민대회’ 등을 개최하면서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보다는 청교도영성훈련원장으로 더 알려졌다. 2014년엔 예장대신 교단의 총회장을 지냈다. 현실 정치에도 꾸준히 관심을 보여 2008년 이후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기독교 정당을 결성해 원내 진출을 시도해왔다.

2019년 한기총 대표회장에 선출된 전광훈 목사는 첫 기자회견에서부터 “문 대통령은 간첩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후 광화문에서 ‘문재인 대통령 하야·퇴진’을 주장하는 대규모 태극기 집회를 한기총 이름으로 개최하면서 본격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4월엔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석방됐다. 석방 이후에도 대정부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광복절 광화문 집회를 놓고도 정부와 날카롭게 각을 세워왔다. 그러나 ‘방역 지침을 지켰다’던 사랑제일교회에서는 연일 확진자가 속출하며 수도권 코로나 19 확산의 진앙이 됐다. 사랑제일교회의 코로나 확산은 개신교계에서 전 목사가 고립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한교총과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 등 개신교 단체는 사랑제일교회 발(發) 코로나 확산에 대해 국민들에게 대신 사과하며 “전 목사와 사랑제일교회는 정치집단화 됐다. 조속히 교회 본모습으로 돌아오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전 목사는 본인 스스로 확진자로 밝혀진 이후에도 “바이러스 테러”라고 주장하며 반발했다. 그랬던 전 목사가 21일 밤 돌연 한기총 대표회장 사퇴를 발표하자 사퇴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날은 광복절 집회 참가자 명단을 확보하려는 당국과 교인들이 대치하다 결국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은 경찰이 교회를 압수수색한 날이기도 하다.

한기총은 과거에 비해 위상이 추락했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목사는 이날 사퇴 의사를 밝힌 음성 파일에서 “앞으로 대표회장을 잘 선출해서 한기총이 한국 교회 부흥을 이루는 데 최선을 다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지만 한기총이 한국 개신교 대표적 연합기관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