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인터넷 사용자가 인터넷 속도 측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웹사이트를 뒤적이다가 낯선 인터넷 서비스 업체가 테스트한 결과를 발견했다. 기록에 남은 업체의 이름은 ‘스페이스X 스타링크(Starlink)’였고, 인터넷 속도 측정에 사용된 지역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였다. 스페이스X는 전기 자동차를 제작하는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민간 우주 기업이고 스타링크는 이 기업이 저궤도 인공위성 수천 개로 지구를 커버해서 인터넷을 공급하려는 프로젝트의 이름이다.

웹사이트에 남은 기록을 보면 스타링크의 인터넷 다운로드 속도는 60Mbps 이하로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아직 인터넷망을 구축 중이기 때문에 제 속도가 나오지 않고 있지만, 이 서비스가 미국과 캐나다의 소비자들에게 공급되는 내년에는 1Gbps 속도를 내는 것이 목표다. 위성 인터넷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인터넷 경쟁 지상에서 우주로

박상현 코드 미디어 디렉터

현재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 스페이스X의 뒤를 빠르게 쫓는 기업은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지난달 말, 스타링크와 마찬가지로 인공위성 수천 개로 지구 상공을 덮는 '카이퍼(Kuiper) 프로젝트'에 1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하고,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승인을 받았다. 베이조스는 자신의 민간 우주 기업 블루오리진을 통해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저궤도 위성 수천 개를 쏘아 올릴 것으로 보인다.

다른 테크 기업도 가만있는 게 아니다. 페이스북은 '아테나(Athena)'라는 위성 인터넷 프로젝트를 발표한 후 인공위성을 제작하고 있고, 구글은 조금 다른 접근을 해서 인공위성이 아닌 성층권에 풍선을 띄워서 케이블이 도달할 수 없는 지역에 인터넷을 공급하는 프로젝트 '룬(Loon)'을 10년 가까이 진행 중이다. 이 기업들은 자신들의 프로젝트가 현재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세계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인터넷을 공급해줄 거라고 설명한다. 적어도 명목상 이유는 그렇다.

그런데 정말 그런 목적을 갖고 하는 일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지구상의 소외된 지역에 인터넷을 공급할 목적이라면 지나치게 거대하고 비싼 프로젝트다. 왜냐하면 외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이만한 프로젝트를 지탱할 만한 지불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자선사업에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모건스탠리의 분석으로는 20년 후에는 '우주 경제'의 규모가 1조달러 넘게 성장한다. 우리 돈으로 1200조원짜리 시장이다. 그런데 그렇게 열리는 시장에서 절반이 인터넷 관련 서비스고, 아무나 뛰어들 수 있는 시장도 아니다. 우수한 기술 인력과 막대한 자금 동원 능력, 그리고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조직 문화가 없으면 안 된다. 이 요소들을 모두 갖춘 기업은 지구상에 몇 개밖에 없다. 바로 실리콘밸리 테크 대기업들이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가장 잘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상업화하지 않은 기술을 선점해서 사업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1970년대에 제록스가 개발하고도 상용화하지 못한 기술을 보고 마우스와 아이콘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도구를 만들어냈고, 미국 국방부에서 개발한 인터넷과 GPS 기술이 공개되자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 덤벼들어 세계 최대 규모 테크 기업으로 성장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에는 우주산업과 인공위성을 통한 인터넷이 아직 가공되지 않은 다이아몬드 같은 사업 기회인 것이다.

게다가 신기술에 투자하면 다른 사업 기회도 따라온다. 스페이스X는 우주로 화물을 나르는 로켓을 실험하는 과정에서 얻은 터널 건설 기술을 가지고 보링컴퍼니(Boring Company)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별도의 터널 건설 사업을 시작했고, 자사 로켓의 운송 능력을 활용해 스타링크라는 인터넷 서비스를 준비하게 되었다. 아마존은 자사의 전자상거래를 위해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다가 아마존 웹서비스라는 세계 최대 클라우드 서비스를 만들어냈고, 미국 정부를 주요 고객으로 끌어들였다. 아마존은 인공위성을 이용한 서비스에서도 정부와의 계약을 노리고 있다고 전해졌다.

새로운 플랫폼 독점 위해 사활 건 충돌

전문가들은 지금 테크 대기업들이 하고 있는 것을 궁극적으로 '땅 싸움'으로 본다. 하늘 위에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는데, 토지와 마찬가지로 지구상의 인공위성 궤도 역시 유한한 자원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2018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궤도에 위성이 많아지면서 위성 간 충돌이 증가하고 우주 쓰레기가 쌓이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아직 여유가 있을 때 선점하지 않으면 후발 주자들에는 아예 기회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런 기회가 왔을 때는 서둘러 독점을 해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시장의 룰이 되었다.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기업인 페이스북이 처음 흑자를 낸 것은 설립 5년 뒤였고, 유튜브는 구글이 인수한 후 오래도록 수익을 내지 못하는 '돈 먹는 하마'였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개의치 않았던 것은 이 기업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플랫폼에 고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하면 그 기업은 가격 결정력을 갖는다.

바로 그 논리가 이 테크 기업들이 인공위성 궤도 선점에 나선 배경이다. 인공위성망을 장악하기만 하면 돈을 벌 기회는 얼마든지 따라온다는 생각이다. 다른 기업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우주라는 영역에 뛰어들어 기회를 선점하는,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