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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IT(정보통신) 기업 애플이 19일(현지 시각) 뉴욕 증시에서 시가총액(기업가치) 2조달러(약 2374조원)를 돌파했다. 스티브 잡스가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한 지 44년 만이다. 시가총액 2조달러를 넘은 건 작년 말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에 이어 두 번째, 미국 기업으로는 처음이다. 삼성전자·현대차 등 우리나라 상장사(2220곳 시가총액 1857조원) 전부를 팔아도 애플 하나를 살 수 없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


애플 주가는 이날 오전 전날보다 1.4% 오른 468달러 65센트를 기록, 시총 2조 달러를 넘었다. 이후 소폭 하락해 시총은 1조9788억 달러로 장을 마쳤다. 뉴욕타임스는 "애플이 시총 1조달러를 넘기는 데 42년 걸렸지만 2조달러 돌파는 2년이면 됐다"고 보도했다.

애플의 시총 2조달러는 비(非)대면 경제를 이끄는 IT 기업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승자라는 점을 다시 확인하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동시에 '코로나 버블' 논란도 불러오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각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푼 대규모 자금이 애플을 비롯한 테크기업의 주가를 지나치게 밀어올렸다는 지적이다.

◇사상 두번째 시총 2조 달러 기업

시가총액 2조달러 고지는 애플이 세계 두번째로 밟아본 기록이다. 지난해 12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가 장중 한때 2조달러를 찍은 게 유일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재정을 사실상 책임진 국영 석유회사이자 구(舊) 경제 체제를 상징하는 아람코와 민간기업이자 테크놀로지라는 신(新) 경제 대표주자 애플의 2조달러 돌파는 의미는 다르다. 전 세계 모든 전문가들이 애플이 아람코를 넘을 것이란 예측을 하지 못했지만 코로나 팬데믹은 7개월만에 판을 바꿔버린 것이다.

고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유가 하락 직격탄을 맞은 아람코는 2분기 순이익이 전년보다 73% 급락했고 시총도 1조7864억 달러로 떨어졌다. 애플은 최악의 미국 경제 상황 속에서도 매출·순이익이 두자리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테크 기업들도 코로나를 뚫고 진격 중이다. 아마존은 2분기 40%의 매출 성장율을 기록했다. 코로나가 촉발한 비(非)대면 경제는 쇼핑·엔터테인먼트·교육 모든 일상을 온라인으로 옮겨왔고, 그 길목(플랫폼·platform)을 미국 테크 기업들이 장악한 것이다.

◇5억5000만명의 애플 경제권

버크셔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은 "애플은 더 이상 기술주가 아닌, 일반 소비자와 밀접한 소비재 기업"이라고 말했다. 코카콜라처럼 소비자에게 없으면 안되는 브랜드라는 것이다. 애플이 아이폰·아이패드·맥북 제조사를 넘어 세계인에게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게임을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애플 매출에서 아이폰 판매 비중은 44.3%(2분기 기준)다. 하지만 알짜 수익은 앱스토어와 애플뮤직(음악), 애플TV플러스(동영상), 애플아케이드(게임), 애플카드(결제)와 같은 서비스 부문에서 나온다. 이익률이 67%에 달한다. 예컨대 아이폰에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를 즐기면서 돈을 지불하면 금액의 30%가 애플이 가져간다. 애플에 주기적으로 돈을 내는 유료 이용자는 5억5000만명이다. 1년 전보다 1억3000만명 늘었다.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이은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웬만한 국가보다 큰 '애플 경제권'을 구축한 것이다.

2분기 삼성전자와 화웨이는 스마트폰 판매량이 줄었지만, 애플은 보급형 모델인 아이폰SE를 내놓으며 판매량을 늘렸다.

애플의 주가 급등 배경엔 액면분할도 있다. 지난달 30일 주식 1주를 4주로 쪼개는 주식 분할을 발표했다. 주식을 쪼개면 개인 투자자들이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다. 애플 주식을 보유한 개인은 현재 73만여명으로, 최근 한달새 18만여명이 증가했다.

◇미국 빅5 테크의 시대… 중국 압도

애플에 이어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2조달러 후보다. 아마존은 올초보다 주가가 76%가 급등해 시총 1조6331억 달러다. 마이크로소프트(시총 1조5869억 달러)나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1조515억 달러), 페이스북(7480억 달러)도 코로나 시대 승승장구하고 있다.

중국 테크기업인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아직 1조 달러에도 못미친다. 텐센트는 이달초 미국 트럼프 정부가 '텐센트의 메신저인 위챗을 사용 금지한다'고 하자, 주가가 장중 10%나 급락했다. 한국과 일본의 1위인 삼성전자나 도요타도 미국 빅테크 기업과 비교하면 반(半)의 반에도 못 미친다.

5대 미국 테크 기업의 시총을 합치면 약 7조 달러다. 세계 3·4위 경제대국인 일본과 독일의 국내총생산(GDP, 2019년 기준)가 각각 5조818억 달러와 3조8456억 달러다. 두 나라가 일년 내내 생산한 모든 가치를 다 모아야, 겨우 기업 5곳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김창경 한양대 교수(과학기술정책과) 교수는 "인공지능은 물론이고 하드웨어 설계능력 등 핵심 부분은 미국 테크기업들이 장악했고, 세계는 미국 테크 패권으로 굳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