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에서 자주 마주치는 30대 청년은 늘 경로석 구석 자리를 고정석처럼 차지한다. 그것도 마스크 없는 민얼굴이다. 어느 날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하철 보안관이 “마스크를 안 썼으니 내리라”고 하자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져 마스크를 꺼내 썼다. 다른 승객들 눈초리가 더 사나워졌다. 있는데 왜 안 썼냐는 것이다. 서울지하철공사가 최근 ‘노(No)마스크’ 승객 신고를 받았더니 19일 동안 3033건, 하루 160건이나 접수됐다고 한다.

▶마스크를 올바르게 착용하면 코로나 감염 위험이 85% 줄고, 안 쓰면 감염 확률이 다섯 배 커진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마스크 착용을 생활화한 경기도 한 교회에 지난달 코로나 환자 세 명이 다녀갔지만 교인 9000명이 모두 음성이었다. 확진자와 함께 비좁은 승용차에 탔는데 마스크 덕에 무사했던 사례도 있다.

▶그런데도 한사코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거나 장식품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턱에만 두르는 '턱스크', 한쪽 귀에만 걸친 '귀스크'족(族)이다. 지하철·엘리베이터 같은 비좁은 공간에서 남 눈치도 보지 않고 당당하게 대화를 나눈다. 자기 숨 쉬기 편하고 피부 짓무르지 않고 화장 지워지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유명 인사들도 여기에 합류했다. 전광훈 목사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도 턱스크를 한 채 전화하는 모습이 공개돼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 집회에서 찍은 턱스크 사진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버젓이 올린 전직 국회의원, 마스크 없이 군중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집회를 중계한 유튜버들도 있다. 방역에 대한 기본 상식이 없다. 타인에 대한 배려도 없다. 사회생활의 기초적 예의도 없다. 내가 안 써도 남들이 다 썼으니 감염 위험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방역 무임승차'는 공동체 구성원의 도리가 아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스페인 독감이 창궐하던 1918년 마스크 의무 착용 법안을 처음 통과시켰다. ‘마스크의 도시’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철저하게 단속을 했다. ‘경찰이 마스크 착용을 거부한 시민의 다리와 손에 총격을 가했다’는 당시 지역 신문 보도가 있을 정도다. 미국 적십자사는 ‘마스크가 99% 감염 예방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일하러 갈 때, 일하면서, 집으로 갈 때, 집에서” 늘 마스크를 쓰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100년 전에도 그런 상식이 통했다. 전염병이 창궐할 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것은 타인에 대한 폭력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행위를 버젓이 하면서 무슨 거창한 주장을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