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모이 홈페이지에 올라온 단어들을 집계했더니 재밌는 통계가 나왔어요. 단어 설명에 '할머니'가 언급된 건 166개인데 '할아버지'는 51개, '엄마'는 54개인데 '아빠'는 9개뿐이더라고요. 사람들이 쓰거나 기억하는 단어 중에 아빠와 관련된 게 그만큼 없다는 얘기예요."

상명대 교수인 국어문화원연합회 김미형(오른쪽) 회장과 김형주 사무국장이 휴대전화와 노트북으로 말모이 홈페이지를 들어보였다. 전국에서 우편으로 보내온 방언 책자와 사전이 노트북 아래 빼곡히 쌓였다.

조선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국립국어원·한글학회·한글과컴퓨터와 함께 펼친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캠페인 공모가 지난 7일 마감됐다. 지난해 10월부터 홈페이지(malmoi100.chosun.com)에 등록된 새 단어만 2만2683개. 우편과 팩스로 보내온 단어, 재야의 우리말 고수들이 직접 만든 책자와 사전을 통째로 보낸 것까지 합하면 10만여개에 이른다. 사전은 3만여 단어를 수록한 강릉방언대사전을 비롯해 창녕방언사전, 예산말사전 등 모두 10권이 들어왔다.

말모이 홈페이지에 올라온 단어를 기준으로 지역별로는 경남이 6248개로 가장 많았고, 경북 4862개, 전남 2509개 순이었다. 주제별로는 '놀이와 생활'과 연관된 단어가 1만831개로 제일 많았고, '소리·동작·형태'는 3385개, '감정 표현' 1685개로 이어졌다. 실무를 맡아 10개월간 분투한 국어문화원연합회 김미형 회장과 김형주 사무국장을 만났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이 많다고 들었다.

김미형 온라인에 500개 이상 단어를 올려주신 분이 4명이나 된다. 제주의 현임종씨가 1518개, 경남 진해의 김영수씨가 944개, 강원도 강릉 이영란씨가 880개, 충남 당진의 조일형씨가 740개. 한꺼번에 수백 개를 올린 게 아니라 생각날 때마다 틈틈이 올려주신 분들이다. 이게 바로 온라인의 힘인 것 같다. 생각날 때마다 올릴 수 있게 게시판을 잘 활용했고, 국민 대다수가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IT 강국'의 강점이 발휘됐다. 그 덕분인지 지금까지 한 번도 조사되지 않은 새로운 단어가 많았다.

김형주 가장 고마웠던 분은 경기도 양주의 신영채씨. '의견스럽다'는 단어를 올렸는데 처음 보는 단어라 확인차 전화를 드렸더니 직접 의정부시 낙양동 곤제마을에 찾아가 토박이 80대 할머니 세 분의 음성을 녹음해 파일을 보내줬다. '의견스럽다'(혹은 '이견스럽다')는 나이 어린 사람이나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이 어른스럽게 제 할 일을 척척 해낼 때 대견스러워하며 쓰는 말이라고 한다. 제주의 김동필씨는 소포 세 번에 걸쳐 총 1380단어에 예문까지 보냈고, 대구의 상희구씨는 예문과 문화 설명을 덧붙여서 54쪽 분량으로 제본까지 해서 보내왔다. 김은실씨는 가족끼리 단톡방을 만들어 모은 단어를 보냈는데 '엄마가 쓰는 사투리' '엄마가 쓰는 욕'까지 있었다. 산림청 공무원을 지낸 표갑수씨는 20년간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수집한 전국의 사투리를 보냈다.

김미형 누구나 쉽게 올릴 수 있는 '열린 수집'이라 이런 성과가 가능했다. 재미있는 건 같은 뜻을 가진 단어가 생활에서 어떻게 쓰이는가에 따라서 뜻풀이가 달리 나타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덕시기'를 경북에선 '추울 때 소의 등을 덮어주는 멍석'으로, 경남에선 '짚으로 엮은 네모난 큰 깔개'로 설명했다. 같은 물건이 용도에 따라 덮개도 되고 깔개도 된다.

―말모이 캠페인의 가장 큰 의미는 뭘까.

김형주 지금이라도 서두르지 않으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말들이 적지 않다는 걸 절감했다. 이번 말모이를 통해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세대의 사투리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어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 지역 고유의 성조, 문장, 문화가 사라진다는 게 더 큰 문제인데, 다행스러운 건 아직 지역의 말과 문화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을 수 있는 어르신들이 계신다는 거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말모이다. 이 말모이 사업이 단발적으로 멈춰서는 안 될 거 같다. 미완이라는 생각을 갖고, 조선일보에서도 이런 코너를 계속 유지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미형 일제강점기의 '말모이'가 하나라도 더 모국어를 모으기 위한 절박한 작업이었다면, 21세기의 우리는 언제든 검색만 하면 단어를 찾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말은 허물없는 친구와도 같아서, 말을 공유하면 유대감을 갖게 되고 소통이 원활해진다. 지역어를 서로 알아간다는 건 다른 사람이 쓰는 말을 소통하려는 마음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우리 문화와 정신으로 연결된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게 말모이 홈페이지는 게시판 형식으로 단어를 올리기만 할 수 있었는데, 댓글을 달 수 있게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특정 단어에 대해 "우리 동네도 썼다" "우리 지역에선 이렇게 썼는데" 식으로 지금보다 더 큰 '말놀이터'가 되지 않았을까. 영화 '말모이'에서 본 장면이 온라인에서 벌어질 수 있는 거다.

김형주 지금은 국민이 온·오프라인으로 모아주신 10만 단어를 전문가 70여 명과 지역 대표 70여 명이 참여해 검토·검증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단어를 엄격하게 정제하고 국립국어원의 최종 검수를 거쳐 국민이 함께 만든 우리말 사전으로 펴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