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음반을 발표한 팝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미국 팝의 ‘디바’ 테일러 스위프트의 새 음반 ‘포크로어(Folklore)’가 지난달 깜짝 공개됐다. 스위프트 같은 유명 가수는 대개 신보가 나오기 몇 달 전부터 발매 예정일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수록곡 가운데 한 곡은 싱글로 먼저 발표하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번처럼 아무런 예고 없이 정규 앨범을 내놓은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더구나 이전까지 스위프트가 보여준 행보가 ‘마케팅의 귀재’와도 같았기 때문에 더욱 놀라웠다. 그녀는 자신의 음반에 티셔츠와 머그컵과 같은 ‘굿즈(기념 상품)’를 끼워 파는 것은 물론, 피자 한 판을 배달시키면 음반을 함께 주는 ‘끼워팔기’ 전략을 가장 활발하게 사용해 온 가수 중 한 명이다. 또 스위프트는 K팝 가수들처럼 정규 음반을 발매할 때 사진을 인쇄해서 카드 형태로 만든 포토 카드(photo card)를 서로 다른 음반 표지에 넣어서 팬들이 음반을 여러 장 구매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원래 이런 전략은 K팝 가수들이 흔히 사용하는 마케팅 기법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스위프트가 K팝의 판매 전략에서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할 수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신보 '포크로어(Folklore)' 발매를 알리는 포스터

그녀의 음악적 궤적도 이채롭다. 데뷔할 무렵에는 ‘귀여운 10대 소녀 컨트리 가수’의 이미지로 출발했다. 그 뒤 여러 장의 음반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미국의 연인(America's Sweetheart)’으로 불릴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20대가 된 이후에는 성인 취향의 컨트리에서 젊은 세대를 겨냥한 최신 팝으로 급격하게 방향을 틀어서 다시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귀엽고 발랄한 소녀에서 쿨하고 세련된 도시 여성의 이미지로 탈바꿈하면서 10~20대 미국 백인 여성들이 닮고 싶어하는 ‘워너비(wannabe)’로 떠올랐다.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하지만 2017년과 2019년 음반은 이전 음반들에 비해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모두 아쉬움을 남겼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임에 분명했다.

그래서일까, 예고도 없이 불쑥 발매된 이번 음반에서 그녀는 인디 음악의 감수성으로 가득한 포크 록으로 다시 한 번 급격하게 방향을 틀었다. 차분하고 관조적이면서 조금은 비상업적인 음악이지만, 이번 음반에 대한 평단이나 대중적 반응은 좋다. 음악 전문 매체에서도 높은 평점을 받았고, 발매 첫 주에만 85만장에 가까운 높은 판매고를 올리며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이번 앨범은 ‘더 이상 최신 유행의 팝에 치중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겠다’라는 선언처럼 들린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모든 것을 이뤘기에 역설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듯했던 그녀에게 유일하게 남은 과제인 비평적인 인정을 받기 위해 치밀하게 설계된 작품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높은 평점을 받을 수 있을지 모두 알고서 거기에 맞춰 만든 음악이라고 할까. 그녀의 대담한 변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가수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노래를 발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상업적 성공을 위해 마케팅 전략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음악적인 정체기가 찾아오면 재빠르게 사람들이 원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파악하고 망설임 없이 방향 전환하는 명민함도 갖춰야 한다. 어쩌면 ‘카멜레온’ 같은 눈부신 변신이야말로 스위프트가 21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가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