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화텡 텐센트 창업자

미국 기업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윗챗 금지령’에 반기를 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애플·포드차·월마트·디즈니·골드만삭스 등 미국 대표 기업은 지난 11일 백악관 관계자와 가진 화상회의에서 “위챗과 위챗의 운영사인 텐센트와 교류를 제한하면 세계 2위 시장인 중국에서 미국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8일 미국 기업과 중국 메신저인 ‘위챗’의 거래를 막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한지 사흘 만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기업 운명이 중국 시장과 깊게 연결돼 있는 미국 주요 기업 10여 곳이 트럼프 대통령의 ‘위챗 금지령’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앱 분석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지난 9~14일 6일간 미국내 위챗 다운로드 수는 트럼프의 금지령이 나오기 1주일 전보다 41% 급증했다. 미국 앱장터에서 위챗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에 중국계 이민자는 물론, 중국 관련 사업을 하는 미국인들도 미리 위챗을 다운 받았기 때문이다. 메신저 앱인 위챗이 뭐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금지조치에 중국은 물론 전 세계가 떠들썩한걸까.

◇중국은 '위챗 왕국'

2011년 1월 출시된 위챗은 서비스 9년만에 세계 월 평균 사용자가 12억 600만명을 돌파했다. 이중 11억명이 중국 현지 이용자다. 인터넷 검열 정책 탓에 구글·페이스북과 같은 해외 인터넷 기업의 서비스가 아예 막힌 탓도 있지만, 중국에서 위챗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대체할 업체는 없을 정도 위상은 절대적이다. 단순히 카톡과 같은 메신저만 하는게 아니라, 위챗을 활용해 위챗페이와 같은 결제를 하고, 각종 앱을 다운로드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중국인에게 위챗은 ‘카톡’과 ‘카카오페이·네이버페이·신용카드 전부’, 그리고 앱스토어·구글스토어를 혼자서 모두 제공하는 셈이다. 중국 정부가 반정부 인사에게 위챗 계정을 없애는 이른바 ‘위챗 삭제형’을 내릴때마다 현지에서 사회 활동의 사망 선고라고 떠들썩할 정도다.

중국의 한 시장에서 위챗페이 결제에 쓰는 QR코드.

위챗은 단순 메신저를 넘어 중국내 ‘앱 유통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위챗 안에서 실행시킬 수 있는 ‘미니앱(샤오청쉬·小程序)’이 기존 앱을 대체하면서다. 예컨대 중국인들은 햄버거를 먹기 위해 맥도날드 앱을 따로 다운받을 필요가 없다. 대신 위챗에서 맥도날드 미니앱을 실행시켜 쿠폰을 받고, 메뉴 주문과 결제까지 한번에 끝낸다.

지난 1월 기준으로 위챗 내 미니앱 수는 300만개를 돌파했다. 애플의 앱스토어가 유통하는 앱 수와 비슷하다. 지난 한 해 위챗의 미니앱에서 발생한 거래액은 8000억 위안(136조 7200억원) 규모다. 위챗은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흡수한 ‘괴물 플랫폼’이 된 것이다.

◇위챗을 삭제하면 아이폰 판매대수 25% 감소할 것 전망도

이러다보니 중국 진출 기업 입장에서 위챗 활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당장 월마트는 지난해 위챗에서 중국내 300여개 매장에서 QR코드 스캔만으로 물품 결제를 하는 ‘월마트 미니앱’을 내놨고, 지금까지 가입자 5000만명을 돌파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의 ‘위챗 금지령’에 월마트가 먼저 반기를 든 것도 이와 같은 현금 창출 서비스를 포기해야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애플도 마찬가지다. 최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전체 참여인원(120만명)의 95%가 “애플에서 위챗을 쓸 수 없게 된다면 안드로이드 폰으로 바꾸겠다”고 답변했다. 애플 전문 애널리스트 궈밍치는 “전 세계 앱스토어에서 위챗이 삭제되면 애플 스마트폰 판매량은 25~30%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위챗이 애플의 운명까지 바꿀 수 있다는 지적이다.

◇텐센트의 투자받은 미국 기업도 수두룩

중국 현지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압박에 곧바로 항복한 틱톡과 달리 위챗은 미국의 제재에도 큰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제임스 미첼 텐센트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지난 12일 2분기 실적발표에서 “위챗 전체 매출에서 미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 미만이고, 텐센트의 전체 광고 수입에서 미국의 비중은 1% 미만으로 더 작다”고 밝혔다. 주력 사업이 해외인 틱톡과 달리, 중국 내수에 의존하는 텐센트에 미국의 제재는 별다른 위협이 안될 것이라는 얘기다.

오히려 최근 수년간 텐센트로부터 투자를 받아온 글로벌 기업이 유탄을 맞을까 안절부절이다. 텐센트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금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800여개 기업에 투자했고, 그 중 70여개 기업이 상장했으며 160개 기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했다.

특히 텐센트의 해외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미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80%에 달한다. 전기차 테슬라의 지분 5%를 갖고 있으며, 미국 메시지 앱 스냅(12%)과 유니버설뮤직(10%)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미국 게임 업계에서 텐센트의 위상은 더 크다. 세계 최대 e스포츠 리그인 ‘리그 오브 레전드(LOL)’를 개발한 미국 라이엇게임즈가 텐센트의 100% 자회사다. 중국 IT매체 36커는 “만약 LOL이 미국에서의 운영이 막히게 된다면, 미국 정부는 미국 내 e스포츠 업체와 게임 스트리밍 업체, 프로 게이머까지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현지 매체들은 “(트럼프 행정부 압박에 미국 사업 매각에 나선) 연약한 틱톡과 달리, 위챗은 굳건할 것이고, 오히려 미국 기업들이 먼저 백기투항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