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오브 드림

리즈 로젠버그 지음|이지민 옮김|아르테 344쪽|1만6000원

"노부부가 고아원에서 남자아이를 입양하려 했는데, 착오가 생겨 한 여자아이가 온다." 1904년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섬, 비혼의 30세 '병아리 소설가' 모드가 일기장에 휘갈겨 둔 오래된 메모를 발견한다. 영감이 번뜩 타올랐다. 그후로 18개월, 모드는 그의 가장 유명한 소설 '빨간 머리 앤'을 쓰기 시작한다. 용감하고 씩씩한 고아 소녀 앤 셜리는 그렇게 탄생한다. 원고를 미국의 한 신생 출판사에 보냈지만 곧바로 거절당한다. 더 오래되고 저명한 캐나다 출판사에 보냈지만 역시나 퇴짜맞는다. 세 군데 더 시도했지만 모두 되돌아왔다. 낙담한 그는 원고를 낡은 모자 상자에 던져 버린다. 이듬해 청소하다 우연히 발견하곤 보스턴의 L.C. 페이지 출판사에 보낸다. 출간 승인 편지는 1907년 4월 8일에 왔다. 그해 말까지 6쇄를 찍었고 2만 부 가까이 팔렸다. 팬레터가 쇄도했다. 모드가 특별히 아낀 팬레터는 일흔세 살의 마크 트웨인이 보낸 것이었다. 그는 앤에 대해 "불멸의 앨리스 이후로 소설 속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라 평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의 한 장면. 모드는 자신의 활발한 상상력, 자연에 대한 열렬한 사랑,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깊고 꾸준한 애착, 허영심과 자만심, 고집까지 ‘앤’에 투영했다.

'빨간 머리 앤'의 어머니, 루시 모드 몽고메리(1874~1942) 평전이다. 뉴욕 빙엄턴 대학 영문학 교수인 저자는 일기와 편지를 바탕으로 모드의 생애를 복원해냈다. "모드는 예술이라는 위대한 마법을 펼쳐서 버림받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로 구출해냈다"고 썼다. 전 세계를 매료시킨 '희망의 아이콘'을 창조해 냈지만 정작 모드의 삶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었다. 두 살 때 어머니를 폐결핵으로 잃었다. 엄격한 외조부모 아래 자란 소녀는 늘 외로웠다. 응접실 찬장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친구 삼았다. 평생 계절성 우울증에 시달렸다. 글쓰기가 유일한 구원이었다. 그는 "글을 쓰지 않거나 작가가 되고 싶지 않았던 적은 없다"고 일기에 적었다.

16세 때, 재혼한 아버지와 살러 간다. 새어머니는 모드를 하녀처럼 부렸다. 아기 보느라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모드는 다시 외가로 돌아온다. 빠듯한 살림에도 손녀 교육엔 헌신적이었던 외할머니 덕에 대학에 진학해 교원 자격증을 딴다. 교사, 신문사 교열기자 등으로 일하며 글을 쓴다. 구혼자들이 줄을 이었지만 몰래 약혼한다. 사별하고 홀로 남은 외할머니가 모드의 결혼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37세 때인 1911년 2월 외할머니가 세상을 뜬다. 그해 7월, 목사 이완 맥도널드와 결혼한다.

남편은 조울증 환자였다. 신(神)에게 선택받지 못했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도 평생 저주받을 운명이라 확신했다. 자식 낳은 걸 후회했으며 아내의 인기를 시샘했다. 모드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두 번의 출산과 한 번의 사산(死産), 두 번의 세계 대전 와중에도 계속 썼다. 생의 마지막 끔찍한 시기를 다작하며 보냈다. 1937년 봄 스물한 번째 책이자 8권짜리 앤 시리즈의 마지막 '잉글사이드의 앤'을 완성했다. 남편의 신경쇠약, 큰아들의 가정불화, 출판사와의 소송, '소녀들의 달콤한 이야기'라는 비평가들의 조롱…. 모드의 말년은 고난으로 얼룩졌다. 1942년 4월 24일 침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머리맡엔 알약이 든 병이 놓여 있었다. 옆의 쪽지에 적혀 있었다. "너무나 끔찍한 상황인데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여러 실수에도 늘 최선을 다하려고 했던 생을 이렇게 마감하게 되다니."

전 세계에 긍정 바이러스를 퍼뜨린 작가가 지독한 고통 속에서 생을 마쳤다는 건 아이러니다. 그렇지만 모드는 말했다. “내 작품에 내 삶의 그늘이 들어가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나는 다른 그 어떤 삶도 어둡게 만들고 싶지 않다. 긍정과 밝음의 전도사가 되고 싶다.” 2차대전 중 폴란드군은 병사들 사기 진작을 위해 책 한 권을 나눠줬다. 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앤의 꿈의 집’(1917)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