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2조원대였던 수해 예방 예산이 2018년 이후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반 토막이 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1년 서울 우면산 산사태 등 수도권 폭우 이후 큰 태풍 피해나 대규모 수해가 없었고, 최근 4~5년 사이 수해 대신 가뭄·폭염이 문제가 되면서 정부가 수해 대비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해 예산을 500조원대로 급격하게 늘린 정부가 당장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수해 예방엔 투자를 줄였다는 것이다.

정부의 물관리 예산 중 수해 예방 항목은 크게 '하천관리 및 홍수예보'와 '댐건설 및 치수능력 증대'가 있다. 지난 2012년 이 두 예산을 합친 금액은 2조8405억원이었다. 그런데 올해 '하천관리 및 홍수예보' 예산은 4020억원, '댐건설 및 치수능력 증대' 예산은 7027억원(환경부와 국토부 해당 예산 합산)에 그쳐 1조1047억원으로 줄어들었다. 8년 만에 치수(治水) 예산이 61%나 줄어든 것이다. 그 사이 정부 전체 예산은 2012년 343조5000억원에서 올해 512조3000억원으로 50% 정도 증가했다.

◇매년 줄어드는 물관리 예산

정부의 수해 예방 예산은 2013년 2조6714억원, 2016년 2조173억원 등으로 차츰 줄어들다 2017년 1조6859억원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국토부가 맡던 '수량 관리'까지 환경부가 맡는 물관리 일원화를 시행한 2018년에는 수해 예방 예산이 9925억원으로 급감했고, 이후 1조원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하천관리 예산 일부가 2018년부터 지방자치단체로 넘어가면서 적게 보이는 것"이라고 했지만, 구체적인 내역은 밝히지 않았다.

산사태가 났을 때 피해를 줄이거나 예방하는 데 쓰는 산사태 방지 예산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산림청의 사방 시설(토사를 막는 댐 등) 설치 예산은 2015년 2977억원에서 올해 1402억원으로 반 토막 아래로 감소했다. 지난해의 경우 사방댐 376개소 설치 예산으로 714억원을 책정했으나 올해 296개소, 553억원으로 상당 폭 감소했다. 산림청이 12일 기준 산사태 피해를 잠정 집계한 결과, 1548건이 발생해 13명의 사상자가 났다. 인명 피해는 사망 7명, 실종 2명, 부상 4명 등이다.

정상만 공주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2011년 큰 수해 이후 수해보다는 가뭄과 폭염이 주요 문제였던 측면도 있지만, 도로 건설 같은 것은 가시적이지만 하천은 정비해봐야 눈에 안 띄니 중앙정부든 지방자치단체든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수재는 꼭 방심할 때 온다"고 말했다.

◇"예산 줄면서 노후 시설 손 못 봐"

이처럼 예산이 줄어들면서 노후화된 수해 방지 시설을 제대로 손보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9일 이번 홍수로 무너진 경남 창녕군 이방면 장천제는 2004년 준공한 시설이다. 부산국토관리청에 따르면 낙동강 본류를 막는 제방이 붕괴된 것은 지난 2002년 태풍으로 인해 함안 백산제가 무너진 후 18년 만이다. 지난 8일 무너진 전북 남원시 금지면 금곡교 인근 제방(섬진제)은 1992년 만든 것이라 보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시설이다.

4대강 사업이 정치적인 논란으로 흐르면서 중앙정부는 물론 지자체들까지 하천 정비에 손을 놓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환경부가 발간하는 '홍수피해 상황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물난리로 피해를 입은 하천의 95% 이상이 지방하천이다. 2019년 피해 하천 53개 중 51개가, 2018년에도 피해가 발생한 137개 중 136개가 지방하천이었다. 수해가 큰 강보다 지류·지천 등 중소 하천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현 정부가 재해예방사업을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로 취급하면서 재해 예방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신현석 부산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4대강 사업에 대한 찬반을 떠나 국가하천을 정비했으면 지방하천, 소하천을 올라가며 정비했어야 했는데, 그게 멈춘 것이 안타깝다"며 "이번 홍수를 계기로 댐과 보, 제방 등 시설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제대로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