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담으면 얼마나 들어가?" "240cc 정도?"

보존과학자 P와 고고학자 Y는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기마 인물형 토기에 대해 이야기 중이었다. 식당에서 시작된 대화가 길에서도 이어졌다. 기마 인물형 토기의 용도는 주전자. 말 등에 있는 깔때기 같은 구멍에 액체를 넣으면 말 가슴의 대롱으로 따를 수 있다. Y는 함께 나온 금관과 허리띠도 크기가 작은 걸 보면 토기 주인은 신라 왕실의 어린 왕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평소보다 과음한 또 다른 후배가 한마디 거든다. "한 모금밖에 안 되네요."

정명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저녁부터 시작된 비는 그쳤지만 택시 호출 앱은 응답이 없었다. 그들은 도로로 다가갔다. 달리는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바라보며 손을 흔든 지 꽤 되었지만 빈 차는 없었다. P는 일상의 대부분을 현미경 속 세계에서 청동 녹과 대화하며 보낸다. 차가 잡히지 않자 휴대폰에 저장된 토기의 엑스레이 사진을 열었다. "다리를 붙이려면 비어 있는 몸통에 힘을 줬을 텐데 이상하네. 어떻게 만들었을까?" 잡히지 않는 택시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P와 Y는 분석 중인 유물 얘기에 다시 몰두하기 시작했다.

구석기 고고학도에게 시간이 만년 단위로 흐른다면, 보존과학자인 P는 마이크로와 나노초(秒)의 보폭으로 사고한다. 화성인과 금성인처럼 다른 별에서 온 이들이 펼치는 수다 삼매경은 신비롭다. 자신의 전시와 연구 주제에 빠진 두 남자 눈에서는 하트가 나온다. 두 사람 모두 빛, 색, 형태 혹은 조형 너머의 것을 좋아한다는 점은 같다. 희미하게 남은 글자를 찾아내 그 시간을 상상하고 고민하던 조각이 맞춰질 때의 발견이 짜릿하다. 유물은 한때 왕성하게 활동했던 이의 애장품이다. 지금은 그 시간에서 멀어졌지만 풀어야 할 암호를 지니고 있다. 노련한 P와 Y는 유물의 기억을 풀어내 누군가에게 들려줄 또 다른 스토리를 만들 것이다. 금령총 주인에게는 말이 도착했지만, 오늘 밤 이들을 태울 택시는 기약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