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지애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前 CNN 서울지국장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뉴욕타임스가 아시아 본부 일부를 홍콩에서 서울로 옮긴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다. 중국 정부가 홍콩 보안법 통과를 계기로 언론 자유를 억죄는 상황에서 대체지로 한국을 선택했다. 도쿄, 싱가포르, 방콕도 거론됐지만, 외국 기업에 친화적이고 독립적 언론이 존재하며 아시아 뉴스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이유로 한국을 낙점했다. 홍콩을 아시아 거점으로 사용하는 다른 국제 언론사들도 뒤따를 가능성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등도 최근 아시아 지역 본부를 홍콩에서 타국으로 옮기는 것을 심각히 고려하고 있다. 미·중 갈등이 깊어질수록 이런 현상은 심화될 것이다.

이럴 경우 한국이 아시아의 새로운 뉴스 허브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과거 한국을 아시아의 금융이나 물류 허브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있었으나 이는 환상에 가까웠다. 반면 뉴스 허브는 가능하다. 최근 몇 년간 한국에 대한 국제적 언론사 관심이 증가했다. 현재 서울외신기자클럽에 등록된 외신 기자 수는 103개 회사 286명에 달한다. 2년 전 264명에서 8% 증가했다. 한국 정치·경제뿐 아니라 문화·사회 등 각 분야에 걸친 뉴스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사실 과거 한국에서 송고하는 외신 뉴스는 대부분 북한과의 긴장 관계, 정치 갈등, 경제 위기, 사회 분열 등 부정적 뉴스가 많았다. 필자가 CNN 서울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도 이 점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이 변했다. 일단 K팝과 영화 '기생충' 등 세계를 석권하는 한류 관련 기사들이 늘었고, 삼성·현대차 등 글로벌 기업들 활약도 뉴스거리다. 북한 관련 기사도 군사 대치와 핵 위기 등 부정적 내용에서 남북, 미·북 정상회담 등 긍정적 전망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다루는 한국의 방역에 대해 외신들이 정부의 효율적인 정책과 민간 분야 자발적인 협조가 어우러져 이뤄낸 큰 성과로 판단하고 있다.

한국이 아시아의 뉴스 허브가 되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 과거 한국 관련 뉴스는 인접한 홍콩이나 도쿄, 베이징 특파원들이 사건이 터지면 잠시 한국으로 건너와 보도하는 게 관행이었다. 한국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피상적이고 왜곡된 기사가 나가기도 했다. 도쿄에 상주하는 외신 기자가 한·일 관계를 보도할 때 일본에 더 기우는 기사를 보내는 건 어쩌면 인지상정이다. 최근 많은 외신사가 서울 인원을 늘리는 추세라 조금 나아졌지만 서울은 아직 홍콩·도쿄 그늘에 가려져 있다. 한국이 뉴스 허브가 되면 한국 입장을 더 정확하고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고 한국 국가 이미지 개선에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도 필요하다. 현재 다국적 기업들의 새로운 아시아 지역 본부로 부상하는 싱가포르, 전통적으로 미국 언론사들이 선호하는 도쿄를 능가하는 언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자유로운 언론 활동을 보장하고 취재 편의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나와야 한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42위로 아시아 최고이지만, 여전히 진영 논리에 갇혀 반대편 언론인들을 비하하고 공격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

국내 언론과 비교해 외국 언론을 차별하는 점도 개선해야 한다. 서울 상주 외신 기자들은 아직도 정부 부처나 다른 공공 기관들이 외신사들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토로한다. 영어 등 외국어로 외신 기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담당자들도 부족하다. 무조건 정책을 자화자찬하는 정부 태도도 문제다. 그보다는 한국의 긍정적인 면들을 찾아 이를 외신사들이 객관적으로 보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효과적이다. 그래야만 뉴욕타임스처럼 한국으로 본부를 이전하는 해외 유력 언론사들이 계속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