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다 유난히 긴 장마까지 겹쳐 지루한 시간이 반복되고 있다. 빗물을 피해 땅을 보고 걷다보면 아스팔트 갈라진 틈새로 삐죽 잎을 벌려 서있는 잡초들이 보인다. 흙도 없는 저런 틈에서 어떻게 나왔을까?

서울 목동 보도에 피어난 바랭이. 한해살이 풀로 약재로 쓰인다

잡초는 어디에도 있다. 번화한 상가 빌딩의 모서리나 동네 하수구 입구, 시멘트 계단 사이와 보도블록 사이에도 초록의 잎을 틔워 당당히 서있다. 잡초는 뽑아도 다시 난다.

제비꽃, 서울 노량진. 제비꽃은 개미들이 씨앗을 물로 나와 뱉은 곳에서 번식한다. 오른쪽에 삐죽 서있는 식물은 망초다

이름을 모를 뿐 잡초는 없다

잡초라는 이름의 식물은 없다. 원래는 논이나 밭을 일구는 농부들에게 작물에 성장을 방해하는 제거해야할 대상을 잡초라고 했다. 언제부턴가 원치 않는 곳에 자란 식물을 모두 잡초로 불렀다.

망초. 서울 목동 아파트 단지 자전거 주차한 구석에 쑥쑥 자란 망초는 나물이나 약초로 활용된다

그러나 잡초는 식용이라 약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쑥이나 미나리는 떡이나 반찬으로 사용되지만 엉뚱한 곳에서 자랄 때 잡초가 된다. 달맞이꽃은 작물이었다가 사람의 관리에서 벗어나 잡초가 되었고, 잔디는 잡초였다가 사람들이 필요해서 작물이 되었다.

왕바랭이. 서울 목동 인도 옆 볼라드옆에 자라는 왕바랭이는 벼과 한해살이 풀로 약재로 사용된다.

37년간 잡초를 연구한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강병화 명예교수(73)는 “사람들이 이름을 모를 뿐 쓸모없는 잡초는 없다”고 했다. 그는 독일에서 제초학 박사를 받고 돌아와 전국을 누비며 야생풀 연구로 60만장의 사진과 1600여종의 잡초 종자를 모았다.

반찬이 되고 약이 되는 잡초

가장 흔한 잡초인 망초는 나물이나 튀김으로도 먹거나 간 해독에 좋아 한약재로도 사용된다. 이삭이 강아지 꼬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의 강아지풀은 벼과 식물로 풍족히 못 먹던 옛날 흉년이 들어 쌀이 부족하면 강아지풀 이삭으로 죽을 쑤어 먹기도 했다.

서울 노원구 우이천변에 자라는 강아지풀. 이삭이 강아지 꼬리를 닮았다고 붙여진 강아지풀은 벼과 식물로 못먹던 시절 강아지풀 이삭으로 죽을 쑤어 먹기도 했다

도심 어디에서든 자라는 바랭이나 왕바랭이는 꽃과 열매가 해열, 이뇨 등의 효과가 있다하여 약재로 쓰인다. 잔디밭이나 아파트 화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양민들레는 잎을 데쳐서 먹기도 하지만, 염증에 좋다하여 약품으로 많이 나와 있는 잡초다.

서양민들레. 서울 목동 보도 블럭 사이에서 자라는 서양민들레는 잎을 데쳐먹기도 하지만 약효가 뛰어난 약품이나 식품으로 많이 나와 있다.
서울 신촌 기차역 옆 밀레오네 계단에서 자라는 어린 오동나무. 번식력이 강한 오동나무는 크면 가구나 악기로 만들어 진다

번식력이 강해서 어릴 때 잡초로 오인되는 어린 오동나무는 건물 틈새에서도 잘 자라는데, 가야금이나 거문고 등의 국악기나 가구 목재로 사용된다. 북미 귀화식물인 붉은서나물은 된장국에 넣어 끓여먹기도 하는데 북미 인디언들은 허브 잎과 알콜을 섞어 복통이나 치질 치료에 사용했다.

서울 노량진의 한 빈집을 점령한 미국자리공. 귀화식물로 번식력이 뛰어나지만 독초로 알려져있다

잡초를 뽑아도 계속 나오는 이유

생명력이 너무 왕성한 것도 때로는 해가 될 때가 있다. 혼자 힘차게 살아도 엉뚱한 곳에 태어나면 다른 꽃과 풀이 살기 위해 잡초는 제거된다. ‘농사의 절반은 잡초제거’라는 말도 있다.

제초제만 있으면 잡초를 쉽게 없애는 줄 알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어떤 잡초는 제초제에도 내성이 생겨서 살아남기 시작했다. 농업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은“잡초의 완전박멸은 어렵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흙속에 종자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권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

지난 1일 서울 노원구 우이천변, 폭우로 물이 넘친후 수초들이 산책로 주변에 걸려있다. 도심의 강이나 하천은 풀들의 전시장이다. 특히 큰 비가 내린 후엔 많은 땅속의 잡초 종자들이 물에 떠내려가서 이동한다.

땅 속에는 수많은 잡초 씨앗(종자)이 있다. 땅에 떨어진 잡초 씨는 절반이 썩거나 새나 쥐 등의 먹이가 된다. 남은 절반만 살아남아도 그 중 풀로 나오는 종자들은 10%도 안되고 나머지 90%는 땅 속에서 나올 때를 기다린다. 국립농업과학원 자료에 의하면 깊이 2cm, 넓이 가로세로 1미터 내에서 논에서 2만개, 밭에서는 4만개에서 8만개의 잡초 씨앗이 땅속에 들어있다고 한다.

망초, 아스팔트 틈 사이에도 어김없이 잡초는 자란다. 우리가 사는 땅 속엔 어디든 사람보다 훨씬 많은 생명의 씨앗들이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다

잡초 씨앗은 땅속에서 오래 사는데 평균 2, 3년 이상을 산다. 강병화 교수는 “길게는 70년까지 사는 잡초 종자도 있다”고 했다. 태어나고 자라는 시간 동안 새로운 잡초의 씨앗은 계속 퍼지고 나온다.

서울 동부이촌동 보도에서 자라난 강아지풀(금강아지풀)은 왕성한 생명력으로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잡초의 생존 전략

도시에서도 땅 속이나 먼지가 모인 틈이 있으면 잡초는 태어나고 자란다. 도심 공원의 잡초는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보도 위에서 자라는 잡초와 종류가 다르다. 밟히면서 씨앗을 퍼뜨리는 질경이는 씨앗을 누군가에게 밟혀서 씨앗이 퍼뜨린다. 민들레는 가볍게 바람에 씨앗을 날려 보내고, 제비꽃은 개미들에게 엘라이오솜이라는 단백질 덩어리를 씨앗에 담아 유혹하면서 그것을 가져다 먹은 개미들이 뱉어내는 꽃씨로 땅에 퍼뜨린다.

제비꽃, 서울 목동의 벽돌틈 사이에 피어난 제비꽃. 단백질 덩어리를 함유한 제비꽃 씨앗을 물고간 개미들이 먹고 뱉은 씨앗을 퍼뜨린다

도시에서 철도는 잡초 씨들의 좋은 이동 수단이다. 기차나 지하철이 지나갈 때 일으키는 강한 바람이 씨앗을 멀리 퍼뜨린다. 그래서 철로 변에는 망초나 민들레가 많다.

일본 풀연구가 이나가케 히데히로는 “봄에 싹을 틔우는 여름 잡초가 반드시 싹을 나게 하는 조건은 반드시‘겨울의 추위를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가을에 나온 종자들은 늦가을 날씨에 봄 인줄 알고 나왔다가 곧 겨울이 와서 얼어 죽는다. 흙 속에서 겨울 추위를 경험한 잡초 씨들만이 진짜 봄을 기다리다가 햇빛을 받고 발아하는 것이다.

긴 장마가 끝나고 햇빛이 나면 땅속에서 웅크리고 기다리던 많은 잡초 종자들이 싹을 트고 나와 자신의 수명만큼 살 것이다.

바랭이. 서울 도심의 한 주상복합건물 모서리에 싹을 틔운 바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