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시장에 간 사이, 할아버지가 와서 "에미는 어디 갔니?" 하고 묻는다. 뭐라고 답해야 할까. ①어머니께서는 시장에 가셨습니다. ②어머니는 시장에 가셨습니다. ③어머니는 시장에 갔습니다. ④에미는 시장에 갔습니다.

정답은 ④번이다. 우리말 높임법에는 '압존법'이 있어서 말 속 주인공보다 듣는 상대가 더 높으면 높임말을 쓸 수 없다. "하지만 '어머니'를 '에미'라고 하는 것도 현실과 잘 맞지 않으니 이 법을 느슨하게 해 ②번이나 ③번을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서정오씨는 신간 '누구나 쉽게 쓰는 우리말'에서 "말이란 자꾸 하다 보면 그 속에 숨은 정신까지 시나브로 스며들게 되니 조심할 일이다"라고 했다.

오랫동안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이야기책 '옛이야기 보따리' 등을 써온 아동문학가 서정오(65)씨가 새 책 '누구나 쉽게 쓰는 우리말'(보리)을 펴냈다. 복잡하고 까다로워 보이지만, 배워서 제대로 쓰면 상대를 배려하고 말하는 이의 진심도 담을 수 있는 우리말 표현법을 소복하게 담았다.

그가 보기에 '미망인'은 여자를 차별하는 고약한 말이다. 남의 아내를 점잖게 이른다는 '부인'도 풀어 보면 '지아비의 사람', 다시 말해 남편한테 매인 사람이란 뜻이다. '부인'이란 말 자체가 '정경부인, 정부인, 숙부인'처럼 벼슬하는 남자들이 자기 아내를 백성과 차별화하려고 만든 데에서 나왔다. 대통령 부인을 가리키는 '영부인'도 '합부인'과 함께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었다. 그러니 어떤 사람한테든 쓸 수 있다. 다만 '어부인'은 일본말이니 안 쓰는 것이 좋겠다.

아내나 남편이 서로를 '여보'라 부르는 건 점잖다. '여기 보오'를 줄인 말이니 상대를 어지간히 높여 준다. 부부가 서로 '자기'라고 부르는 것은 상대를 내 자리가 아니라 상대 자리에서 봐 준다는 점에서 꽤나 예쁘고 사랑스럽다. '자기'는 본디 말하는 이가 스스로 부르고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날을 세는 우리말 '하루, 이틀, 사흘…'은 '일일, 이일, 삼일…'보다 예쁘고 감칠맛이 난다. "어제 그 사람을 우연찮게 만났지 뭐니"에서 '우연찮게'는 엄격히 따지면 '우연하지 않다'는 뜻이니, "우연히 만났지 뭐니"라고 해야 한다. "우리 할아버진 참 주책이셔"는 어떨까? '주책(주인 된 이로서 자리 잡음)없다'가 맞는 말이니, "참 주책없으셔"로 쓰는 편이 좋다.

물론 여태 널리 써 오던 말이고 마땅히 대신할 말도 없으니 뜻을 의식하지 않고 쓴다면 굳이 문제 될 게 없지 않으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말과 글은 곧 사람이다. 생각이 곧 말과 글이 되고, 거꾸로 말과 글이 생각을 만든다. 삶에서 말과 글이 우러나오고, 거꾸로 말과 글이 삶을 결정한다. 우리말을 바르게 하고 우리 글을 바르게 써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