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는 자유로운 유희 속에서 인간을 가장 순수한 곳에 이르게 하는 상상의 사유물이다. 동화는 상처받고 결핍된 세계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꾸는 사람들의 잠자리를 포근하게 덮어주는 꿈 이불이며, 무의미한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다."

"내 안에 은폐된 샘을 찾아서 물을 길어 마시듯 그림을 그렸다"는 민병일 시인.

민병일(61) 시인이 어른을 위한 동화 '바오밥나무와 방랑자'(문학과 지성사)를 냈다. 독일에서 시각예술학을 공부한 민 시인은 광주광역시에 살면서 '전방위 예술가'로 활동해왔다. 그는 시집 두 권을 냈을 뿐만 아니라 사진작가이기도 하고, 에세이 모음집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로 2017년 전숙희 문학상을 받았다. '문학판' 출판사 편집인으로, 디자인이 남다른 양장본을 펴내는 책의 장인이기도 하다.

재주 많은 민 시인이 처음 시도한 동화책은 '버려진 꿈을 모으는 방랑자가 있습니다'로 시작한다. 그 방랑자는 유리병에 꿈을 담아 돌아다니다가 바오밥나무와 대화를 나눈다. 바오밥나무는 병 속의 꿈이 안 보인다고 한다. 방랑자는 "꿈은 눈으로만 보면 보이지 않거든요. …꿈은 자신이 꾸는 것이지만, 내면의 열정이 식으면 이방인처럼 낯설게 머물다 떠납니다"라고 일깨워준다.

방랑자는 이 책을 쓴 시인을 대변하면서 꿈에 기초한 존재론과 예술론을 설파한다. "유리병 안의 꿈을 보려면 우선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순금보다 빛나는 그리움과 동경을 유리병 안의 꿈에 물들게 해야 합니다. 꿈이 단박에 보인다면, 그건 꿈이 아니라 투기심이 빚은 욕망이지요." 또 말한다. "수백 년 된 바이올린도 쓰지 않고 놔두면 아무리 명기라 해도 제소릴 못 낸다고 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자벨 파우스트도 70년 넘게 잠들어 있던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의 소리를 찾는 데 5년여 세월이 걸렸다지요. 무엇이든 자기 것이 되기 위해선 절대적으로 공들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꿈도 마찬가지랍니다."

민 시인은 선사시대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해 인류의 모든 예술작품을 '형상 공간'이라고 부른다. 그는 "독일 사람들은 '형상 공간'을 '빌트라움(Bildraum)'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말로 옮기면 '그림의 방'이다. 꿈이, 상상이, 그림으로 만들어지는 방이라니!"라며 감탄했다. 화가 황주리는 책 뒤표지에 실린 추천사를 통해 민 시인의 삽화를 '샤갈과 루소와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그림을 합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 시인은 "화가도 아니면서 철없이 책에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은, 그림은 글쓰기의 또 다른 유희이며 동화에 숨겨진 또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어느 별 카페테라스에선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그림엽서를 쓰고, 어느 별 바오밥나무 아래선 미처 못다 쓴 동화를 다시 쓸 것"이라며 앞날의 동화 창작을 넌지시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