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끝 모를 장마가 추적추적 이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역대 가장 길었던 2013년 49일 장마 기록을 넘어설 기세다. 기상 이변은 워낙 원인을 규명하기가 쉽지 않지만, 이번 경우는 북극 지방의 때아닌 이상 고온 때문에 일어난 명백한 기후변화 현상이다. 한반도 날씨가 예전 같지 않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는 공공연히 '기후 깡패'로 불린다. 2007~2017년에 다른 OECD 국가들은 탄소 배출량을 평균 8.7% 줄인 반면 우리나라는 되레 24.6%나 늘었다. 2019년 유엔기후변화총회가 발표한 '기후변화 대응 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체 61국 가운데 58위다. 세계생물다양성협약 의장으로 활동하던 2014~2016년에 나는 국제회의를 주재하다 말고 우리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이슈를 다룰 때마다 번번이 의장석에서 내려와야 했다. 깡패 두목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는 비록 깡패 짓은 할망정 양심은 있어서 지구온난화로 물에 잠겨가는 투발루나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에 미안해한다. 하지만 웬 착각? 지금 전례 없는 물난리를 겪으면서도 모르는가? 정작 자기 집이 물에 잠기는 줄도 모르는 채 다른 나라들에 미안해하며 겸연쩍게 뒤통수를 긁는 탄소 배출량 세계 7위 국가가 바로 우리다. 우리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다.

나는 이미 우리가 앞으로 코로나19 같은 대재앙을 수시로 겪을 것이라 경고했다. 기후변화에 관해서도 똑같은 경고를 내릴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어정쩡하게 여러 기후대에 걸쳐 있는 나라는 앞으로 극단적인 홍수와 가뭄을 번갈아 겪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최근 발표한 그린 뉴딜에 끝내 2050년 탄소 중립 선언을 담지 않았다. 감축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 국제사회 눈치나 살피는 지질한 ‘기후 깡패’인 줄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제 살 깎아 먹는 줄도 모르는 ‘기후 바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