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 여의도공원 앞에서 열린 정부 부동산 정책 반대 집회에는 '임대차보호법, 모두 피해자!'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정부와 여당의 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피해를 봤다는 뜻이다. 온 나라가 '부동산 블루(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23번이나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대다수 시장 참여자는 불만으로 가득하다. 집이 있는 사람도 걱정이고, 집이 없는 사람은 절망스럽다. 다주택자는 '세금 폭탄'에 분노하는데, 세입자들의 주거 불안은 여전하다. 부동산 이슈를 둘러싼 중장년층과 청년층 사이의 분열과 갈등은 최고치에 달했다. 정부 정책으로 웃는 사람은 없고, "현금 부자랑 세금 걷는 정부만 신났다"는 조롱이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부동산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치솟는 것과 관련해 "정부 정책이 진정 서민을 위한 것인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때문인지 모호한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세입자는 불안, 집주인은 분통

7월 말 전격 시행된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으로 집주인과 세입자 누구도 웃지 못하는 상황이다. 세입자 입장에선 '2+2년'을 거주하고 난 다음 보증금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를 수 있다는 우려에 불안하다. '실거주할 테니 집을 빼라'는 집주인의 요구를 받는 세입자도 많다.

치솟는 전세금과 '매물 잠김'도 세입자들의 주거 불안을 가중하고 있다. 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이 집계한 전국 전세가격지수(100.9)와 서울 전세가격지수(102.9)는 1986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집주인은 전세금을 시세에 맞게 올리지도 못하고 집을 마음대로 팔지도 못하는데 이는 재산권 침해라고 주장한다. 지난달 집을 매도한 김모(51)씨는 "전세 계약이 끝나는 10월에 잔금을 받아야 하는데, 세입자가 '나는 못 나가니까 소송하든 마음대로 하라'고 배짱을 부린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다주택자 분노, 무주택자 절망

다주택자들은 '세금 폭탄'에 집을 갖고 있기도, 팔기도 어렵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30평대를 한 채씩 가진 사람은 2018년 882만원이던 보유세가 내년이면 7000만원 이상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집을 팔면 양도차익의 약 58%(양도세 52%+지방세 5.2%)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내년 6월이 지나면 양도세율은 68%로 뛴다. 다주택자를 향해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라"고 장려하던 정부는 7월 돌연 이 제도를 폐지해 퇴로(退路)마저 막아버렸다. 1주택자도 늘어난 세금에 걱정이다. 지난달 120여만원의 재산세 고지서를 받은 은퇴자 이모(71)씨는 "40년 직장생활로 아파트 한 채 장만한 게 그렇게 큰 잘못이냐"고 말했다.

내 집 마련을 꿈꾸는 무주택자들은 치솟는 집값과 대출 규제에 좌절하고 있다. 이번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6억635만원에서 9억2787만원으로 53% 급등했다. 주택담보대출·전세대출 등을 막아버려 현금 부자만 집을 살 수 있다는 소리가 나온다. 직장인 이모(36)씨는 "2~3년 전만 해도 대출을 활용하면 서울에 작은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 방법도 안 된다"고 했다.

◇2030 "그림의 떡", 4050 "역차별"

정부는 신혼부부와 직장 초년생을 위한 특별공급 등 청약기회 확대, 집값의 일부만 내면 거주가 가능한 '지분적립형' 분양주택 등 20~30대의 내 집 마련을 돕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내놓았다. 그러자 청약 당첨 기회가 줄어든 40~50대 중장년 무주택자들은 '역차별'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젊은 층은 "아파트 청약 때 무주택기간, 부양가족 수 등을 따지다 보니 청약 당첨은 그림의 떡"이라고 불평한다.

정부 지원이 집중되는 2030세대 안에서도 갈등이 불거진다. 정부 지원을 받는 소득기준 때문에 맞벌이 부부는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을 받으려면 월평균 소득이 3인 가구 기준 844만원인데, 대기업 맞벌이 직장인의 상당수가 해당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