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지난 2일 유럽계 컨설팅 업체인 '에너데이터(Enerdata)'는 지난해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4.8%로, 조사 대상국 44곳 평균인 26.6%에 크게 못 미쳤고 44국 가운데 40위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 노르웨이(97.6%), 브라질(82.3%), 뉴질랜드(81.9%), 캐나다(64.9%), 스웨덴(58.7%) 등을 꼽았다. 국내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보도하면서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꼴찌'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걸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발표된 통계는 사실(fact)이다. 그러나 진실(truth)이 되기 위해서는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재생에너지 비율에는 수력발전이 포함된 것이다. 수력발전은 물을 가둘 수 있는 지형적 조건이 되는 나라에만 가능하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높게 나타난 국가들은 모두 수력이 많은 것이지 지금 정부가 앞장서서 보급하려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전력 생산에서 태양광·풍력 발전 비율도 우리나라가 2.6%로 조사 국가 44곳 중 31위이고 독일(28.9%), 스페인(25.6%) 등 유럽 국가들보다 낮다. 여기엔 무엇이 숨어있을까? 우리나라에서 태양광과 풍력 발전 이용률이 각각 15%와 20%로 현저히 낮은 것이다. 즉 태양광과 풍력 발전소를 건설해 놓으면 실제로 가동되어 전력을 생산하는 양이 15%와 20%밖에 되지 않는다. 태양과 풍력 자원이 나쁜 것이다. 이것은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늘려야 할 이유가 아니라 줄여야 할 이유다.

셋째, 에너지 정책은 나라마다 가진 기술과 환경 여건에 맞추는 것이지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독일은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면서도 갈탄 발전도 많이 한다. 물론 결국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지 못한다는 비웃음을 받고 있지만 아무튼 그 나라에서 갈탄 생산이 많은 것이다. 프랑스가 원자력발전 비율을 70%나 유지하는 것은 다른 자원이 적기 때문이다. 영국이 천연가스(LNG) 발전을 많이 했던 것은 북해유전에서 LNG가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북해유전의 LNG가 고갈되니 다시 원자력발전을 고려하는 것이다. 이처럼 가진 자원에 따라서 국가의 에너지 정책은 바뀐다. 또한 가지고 있는 기술과 산업에 따라서도 에너지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다. 에너지 정책을 놓고 마치 올림픽 경기와 같이 묘한 경쟁 심리를 자극하는 것은 감정적 착시를 유도하는 것이다.

넷째, 가장 중요한 것은 재생에너지 발전의 보급이 아니라 온실가스를 저감하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지구적 현상이다. 특정 국가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해서 그 나라의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국가별로 순위를 매겨야 한다면 온실가스 배출을 얼마나 적게 했는지의 순위를 매겨서 국가별 기여도를 따져야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따지는 것은 맞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영어 시험을 봐서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학원비를 얼마나 들였는지로 순서를 매기는 것과 같은 오류인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저감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오늘 우리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해도 다른 나라가 마구 배출해 버린다면 우리만 손해를 본다. 또 선진국과 후진국, 과거·현세대와 차세대 간 원인과 결과 사이의 비대칭성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온실가스 배출을 저감하기 어려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명하다.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할 수 있는 가장 값싸고 유효한 수단인 원자력발전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