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천의 재개발 단지 등의 용적률을 500%까지 늘리는 등의 방식으로 총 13만여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23번째 부동산 대책이 하루 만에 혼란에 빠졌다. 재건축·재개발 조합과 주민들이 반발하고 해당 지역 구청장이며 국회의원들도 반대하고 나섰다. 과천시는 정부청사 마당에 천막 시장실을 설치하고 '천막 알박기' 시위까지 하고 나섰다. 이 엄청난 개발 계획을 관련 주민 의견 청취는 물론 지자체 조율도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정부 행태부터 정상이 아니다.

이번 대책은 서울 집값 안정의 핵심 카드로 여겨져온 아파트 공급 대책이란 점에서 기대를 모았지만 내용을 보면 과연 제대로 주택 공급이 이뤄질지 의문이 들게 한다. 이익 배분이나 개발 방식이 시장 원리를 무시하는 구조로 짜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개발·재건축을 공공 개발로 추진하면 용적률을 두 배로 늘려 50층짜리 아파트를 짓게 해주겠다면서 대신 초과 이익의 90%까지를 환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재개발·재건축 단지 주민에게 개발 이익을 거의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득이 없는데 주민들이 왜 개발에 동의해주겠나. 실제로 서울 지역의 재개발 조합은 대부분 이런 조건이라면 재개발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다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 정부 들어 23번 쏟아낸 부동산 대책이 모두 '실패가 예정된' 것이었다. 시장 원리 대신 오로지 다주택자, 투기 세력을 때려잡아 지지도를 올리겠다는 정치 프레임으로 정책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집값 안정에 가장 효과적인 공급 대책은 아예 검토 대상에서 제외한 채 세금과 규제를 퍼붓고 대출 틀어막는 수요 억제책으로 일관했다. 마치 집값 안정보다 집 부자들을 때리는 데 정책 우선순위를 두는 듯 보였다. 그렇게 22번 실패를 반복한 끝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서울 주택 공급 방안을 꺼내 들었지만 역시 설계 자체에 치명적 결함이 있었다. 관련 주민들의 지지를 못 얻는 대책으로 어떻게 시장이 원하는 양질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건가.

이제 많은 국민이 진짜 집값 잡을 의지가 있는지 정부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부동산 안정보다 소수의 집 부자를 때려 다수가 대리 만족을 얻게 하려는 '부동산 정치'가 주목적 아니냐는 것이다. 종부세 등을 대폭 올리는 세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날, 여권의 한 의원은 "집값이 올라도 우린 문제없다. 다만 세금만 열심히 내달라"고 했다. 이게 본심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