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오는 2028년까지 서울과 수도권에 신규 주택을 총 13만2000가구 추가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아파트 층수 제한인 '35층 규제'를 완화해 50층 높이도 허용하는 공공 참여형 재건축을 도입하고, 서울 태릉골프장 같은 공공기관 부지에도 아파트를 짓기로 했다. 이제라도 부동산 공급 대책으로 물꼬를 튼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공급 대책이 당장 급등하는 집값이나 전셋값을 잡기에 역부족일 수도 있다. 실제 새 아파트를 지어 공급 물량이 늘어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데다, 서울시나 해당 지자체의 반발 등 넘어야 할 난관도 많다.

불과 20일 전까지도 국토교통부 장관은 "서울의 주택 공급은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집값 급등을 다주택자와 투기꾼 탓으로만 돌렸다. 대출을 옥죄고, 세금을 올리는 수요 억제책에만 매달렸다. 주택 시장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모두 잘못돼 문재인 정부 들어 3년 만에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은 52%나 폭등했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집값은 폭등하니 불안해진 30대들까지 앞다퉈 집 구매에 나서는 과열 현상이 빚어졌다. 집값은 더 뛰었다.

서울 주택 정책에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서울의 인구밀도는 ㎢당 1만6000여 명으로, 뉴욕의 8배, 런던·도쿄의 3배다. OECD 국가들의 주요 대도시 가운데 압도적 1위다. 한마디로 홍콩 같은 고밀도 개발이 불가피한 도시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살려면 부동산 공급을 억제하는 용적률 제한, 각종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전면 재검토해 세계적인 대도시로 개발하겠다는 비전과 구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하고 2012년부터 6년간 서울시는 390곳 이상 지역에서 재개발·재건축을 취소해 새 아파트 25만가구를 못 짓게 했다. '아파트 35층 규제'가 무슨 금과옥조인 것처럼 규제를 틀어쥐고 재건축·재개발을 막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재건축의 순기능은 외면하고 일부의 이익을 죄악시하는 '부동산 정치'에만 매달렸다. 결국은 풍선 효과로 서울 전역의 집값을 다 올려놨다.

정부가 간과한 또 다른 측면이 주택의 질(質)이다. 소득 1만달러 시대에 지어진 아파트와 3만달러 시대에 짓는 아파트는 전혀 다른 상품이다. 소비자들은 신상품을 원하는데 새 아파트 건설은 틀어막고 주거의 질이 열악한 낡은 아파트까지 다 포함해 "주택 공급 충분"이라고 하니 정부 말이 먹혀들질 않는 것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새 아파트가 찔끔 공급되니 청약 경쟁률이 수백 대 1에 달하는 로또 청약이 되는 것이다.

결국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국민에게 '집은 지속적으로 공급된다' '조바심 낼 필요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수밖에 없다. 몇 년이라도 인내심을 갖고 그런 실행력을 보여주면 국민도 정부를 믿고 기다릴 것이다. 결국에는 집값도 안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