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마가 할퀸 펜션 - 3일 오전 경기 가평군의 한 펜션이 집중호우에 떠밀려 내려온 토사에 뒤덮여 형체를 잃고 무너져 있다. 이날 산사태로 펜션 주인·딸·손자 등 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이날 일대에는 시간당 최대 80㎜의 폭우가 내렸다.

"어머니 혼자 고생한다며 외국에 살던 딸이 어린 아들과 함께 귀국해 펜션 일을 도왔는데…."

3일 오후 경기 가평군 가평읍 산유리의 한 펜션에서는 굴착기 4대가 진흙더미를 조심스레 긁어냈다. 폭격을 맞은 듯 무너진 건물은 본래 모습을 짐작하기 어려웠고, 주차한 차량 4대도 토사를 덮어쓰고 있었다. 투입된 구조대원들은 건물 잔해를 수색하느라 바빴다. 펜션 주인 김모(65)씨의 딸과, 손자 등 3대 가족, 베트남인 관리 직원 등 4명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실낱같던 희망은 오후 3시 29분쯤 온몸에 진흙을 덮어쓴 딸(37)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오열로 변했다. 오후 5시를 넘기면서 주인 김씨, 손자(2)의 시신도 나왔다. 기적을 바라며 지켜보던 인근 주민들은 하늘을 원망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펜션 주인은 올해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함께 참변을 당한 30대 딸은 뉴질랜드에서 살다가 최근 아들과 함께 귀국해 어머니의 일손을 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펜션은 이날 오전 10시 37분쯤 갑자기 무너졌다. 뒤편 비탈진 언덕의 토사가 폭우에 쓸려 주인 가족이 머물던 관리동 건물을 덮쳤다. 옆 2층 숙박동에도 투숙객이 있었으나 다행히 무사했다. 당시 가평군 일대에는 시간당 최대 80㎜의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이날 경기도에서는 집중호우에 따른 인명 피해가 잇따라 발생했다. 오전 10시 47분쯤에는 평택시 청북읍 후사리 반도체 장비 제조 공장에서 매몰 사고가 발생했다. 평택은 지난달 29일부터 이날 정오까지 누적 강수량이 395㎜를 기록했다. 뒤편 야산의 토사가 밀려와 천막 지붕 가건물의 블록 벽체를 무너뜨렸다. 벽체 근처에서 작업하던 4명이 순식간에 벽체 잔해와 흙더미에 갇혔다. 3명은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끝내 숨졌다. 생존 근로자는 "갑자기 벽이 무너지고 집채 같은 흙더미가 덮치는 바람에 죽을 힘을 다해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번 폭우로 3일 오후 10시 30분 현재 12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실종됐다. 전국 곳곳에서 이재민 865명이 발생했다. 충남 서북부 지역은 시간당 40㎜가 넘는 비가 쏟아지면서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천안은 오후 한때 시간당 64㎜에 달하는 폭우가 쏟아지며 도로 곳곳이 물에 잠겼다. 수심을 가늠하지 못한 일부 운전자들이 차를 몰고 가다 물에 잠겨 멈추는 일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아산시도 오후 들어 시내 모든 지하차도가 물에 잠겨 차량 통행이 제한됐다. 아산시는 오후 3시쯤 곡교천 범람이 우려되자 염치읍 곡교리, 송곡리, 석정리 3개 마을 주민 3700여 명을 대상으로 대피를 통보했다. 오후 1시 40분쯤에는 아산시 탕정면 한 승마장 인근에서 "맨홀에 사람이 빠져 사라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오후 2시쯤에는 송악면 유곡리에서 70대와 80대 노인 2명이 하천에 빠져 실종됐다.

서울 한강 물이 불어나면서 이날 오후 올림픽대로 한강철교에서 당산철교 구간 양 방면이 한때 전면 통제됐다. 전날 오후 5시쯤부터 폐쇄된 잠수교 통제는 이날도 계속 이어졌다.

기상청은 오는 10일까지 중부지방에서 장마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제주도는 6월 10일 장마가 시작돼 49일간 이어진 후 7월 29일 끝나 1973년 기상 관측 시작 이래 47년 만에 가장 긴 장마 기록을 경신했다. 지난 2일 기준 올해 장마 기간 전국의 평균 강수량은 536.2㎜로 장마철 최고 강수량을 기록한 2011년 590.3㎜보다는 적은 양이다. 중부지방만 보면 2일까지 평균 494.7㎜의 비가 내려 종전 기록인 757.1㎜를 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부지방의 경우 올 장마 평균 강수량이 566.5㎜, 강수일수는 23.7일로 모두 역대 최고치였던 2011년(468.3㎜, 21.3일)을 앞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