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를 뚫고 전시장에 들어서자 갓난아이 웃음소리가 들렸다. 국내 최대 청년 미술 축제 ’2020 아시아프(ASYAAF)' 2부 개막을 하루 앞둔 3일, 한 살배기 딸을 유모차에 앉혀둔 채 화가 나하린(31)씨는 벽에 그림을 걸고 있었다. 그는 꽤 긴 장마철을 지나왔다. “스무살 때부터 인물화를 그렸지만 시장(市場)은 웃어주질 않았다. 인기 장르가 아니었다.” 잠시 꽃 그림 등을 그리며 수익도 괜찮게 올렸지만, 가난을 각오하고 그는 다시 인물화로 돌아왔다. “줄곧 현대인의 초상을 담고 싶었다. 내 예술의 이유를 돈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다 2년 전 해외 러브콜을 받고 이탈리아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조금씩 볕이 들고 있다.

빗줄기가 거세도 결국은 그친다는 사실을 화가 임다솔(25)씨는 올해 체득했다. 수년째 화폭에 오로지 젤리만을 그려왔다. 수퍼마켓에 흔히 있는 지렁이 모양 '꿈틀이' 젤리다. "그림으로 성공한다는 게 너무 막막했다. 나 자신이 엎어진 화분 속에서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깨닫는 지렁이처럼 느껴졌고 그걸 평소 즐겨 먹던 젤리에 빗대 그렸다." 다른 전공으로 대학원 원서를 내면서 그는 "마지막 심정으로" '아시아프'에 지원해 합격했다. "계속 그리라는 하늘의 뜻 같다. 붓을 놓지 않겠다."

'아시아프' 2부 개막 전날 김예원(오른쪽서 둘째)씨가 작품 '기억의 조각들'을 걸고 있다.

조선일보사·홍익대학교가 공동 주최하는 이번 행사 2부는 작가 258인의 작품 727점을 서울 홍익대 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다. 자수와 수채로 모네의 ‘수련 연못’을 패러디하거나, 캔버스 천을 잘라 공구(工具) 형태로 바느질하는 등의 유쾌한 재기로 가득하다. 미술에 생애를 걸기로 한 36세 이상 작가들의 섹션 ‘히든 아티스트’ 부문에서도 49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코로나 사태와 궂은 날씨에도 1부에만 관람객 5756명이 찾았고, 작품 239점이 판매됐다. 2부는 16일까지 열린다. 1부 출품작은 온라인에서 구매 가능하다. 월요일 휴관. 입장료 성인 6000원, 유치원 및 초·중·고교생 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