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미국인 A씨는 2018년부터 수도권과 충청권 소형아파트 42채를 ‘갭투자’로 사들였다. A씨가 사들인 아파트의 시가는 모두 67억원에 달했지만, 자금 출처가 불분명했다.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거나,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외국에서 A씨 계좌에 송금된 흔적도 없었다. 국세청은 A씨가 아파트를 사들인 자금의 출처가 분명하지 않아 탈루한 소득이 있다고 보고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A씨는 임대소득을 과소신고해 세금을 탈루한 혐의도 받고 있다.

외국 법인의 국내사무소에서 임원으로 근무 중인 50대 외국인 B씨는 시가 45억원 상당의 한강변 아파트와 30억원짜리 강남 아파트 등 합계 120억원에 달하는 아파트 4채를 갖고 있다. B씨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1채를 제외한 나머지 3채는 임대했는데, 주택임대소득 신고를 하지 않고 탈루한 혐의를 받고 있다. 보통 임차인이 월세 세액공제를 신청하면서 자연스레 집주인의 주택임대소득이 드러나는데, 외국인 근로자는 주민등록법상 세대주에 해당하지 않아 월세 세액공제 대상이 아니라서 월세 세액공제를 신청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B씨가 보유한 한강변 아파트와 강남 아파트의 월세는 1000만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리핑 중인 임광현 조사국장

국세청은 A씨와 B씨처럼 아파트 여러 채를 보유하면서 주택임대소득 등을 누락한 것으로 의심되는 외국인 42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4일 밝혔다.

◇올해 5월까지 외국인 국내 아파트 거래액 49.1% 폭증

국세청이 외국인 다주택자 세무조사에 나선 것은 최근 외국인들의 국내 아파트 취득건수와 거래금액이 증가하면서 부동산과 관련 내국인이 차별받는다는 우려가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임광현 국세청 조사국장은 "부동산 투기와 관련해서는 내·외국인 상관없이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5308건이었던 외국인의 국내 아파트 취득건수는 2018년 6974건, 지난해엔 7371건으로 늘었다. 거래금액 역시 2017년 1조7899억원에서 2018년 2조2312억원, 지난해엔 2조3976억원으로 증가했다. 특히 올해 들어서 외국인의 국내 아파트 취득 건수와 거래액은 폭증하고 있다. 올해 1~5월까지 외국인의 국내 아파트 취득건수는 3514건, 거래금액은 1조2539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2768건·8407억원) 대비 취득건수는 26.9%, 거래 금액은 49.1% 폭증했다.

외국인의 아파트 취득이 급증한 이유로는 자금조달이 내국인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운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 급등의 이익을 누리려는 수요가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2·16 대책으로 투기과열지구 내 주택을 구매할 때 국내 거주자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가 빡빡해졌다. 9억원 이하인 경우 40%, 9억원 초과 15억원 미만인 경우 20%, 15억원을 넘는 주택은 아예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러나 외국인의 경우 현지에서 주택 구매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받아 국내로 보낼 수 있다는 게 금융투자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아파트 보유한 외국인 셋 중 한명은 실거주 하지 않아

2017년부터 올해 5월까지 총 2만3219명의 외국인은 국내 아파트 총 2만3167채를 취득했다. 이들의 아파트 거래금액은 7조6726억원에 이른다. 이 기간 국적별로는 중국인의 취득건수가 1만3573건(거래금액 3조1691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미국인(4282건·2조1906억원), 캐나다인(1504건·7987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 주민등록번호를 보유한 외국인 국적자,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 985명도 같은 기간 국내 아파트를 취득했다.

취득 지역별로는 서울이 4473건, 3조2725억원으로 집계됐고, 경기도(1만93건, 2조7483억원), 인천(2674건, 6254억원) 순으로 수도권에 외국인 아파트 취득이 집중됐다. 강남 3구의 경우 강남구(517건·6678억원), 서초구(391건·4392억원), 송파구(244건·2406억원)로 나타났다. 두 채 이상 아파트를 취득한 외국인은 총 1036명으로 2주택자가 866명이었다. 이외에도 3주택자는 105명, 4주택 이상자도 65명에 달했다. 외국인이 취득 아파트 2만3167채 중 소유주가 취득 후 한 번도 거주하지 않은 아파트는 32.7%(7569건)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