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30일(현지 시각) 오전 트위터로 갑자기 11월 3일로 예정된 대선 연기를 제안했다가, 이날 오후 "대선 연기를 원치 않는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는 이날 오후 5시 40분부터 시작된 백악관 코로나 브리핑에서 대선 연기와 관련한 질문에 "나는 선거를 미루고 싶지 않다"며 "나는 선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날 오전 8시 46분쯤 트위터에 코로나로 인한 우편투표 확대 문제를 거론하며 "사람들이 안심하고 안전하게 투표할 수 있을 때까지 선거를 미룬다???"고 적어 파문을 일으킨 지 9시간 만에 말을 바꾼 것이다.

그는 브리핑에서 대선 연기 트윗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처음엔 즉답을 하지 않고 "우편투표를 강행할 경우 선거가 끝난 뒤에도 누가 이겼는지 모를 수 있다"며 우편투표의 문제점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민주당은 우편투표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기자들이 답답한 듯 '선거 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인가'라고 재차 묻자 그제야 "선거를 미루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가 급히 입장을 바꾼 것은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 상·하원 지도부가 일제히 반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전쟁에도, 불황에도, 남북전쟁에도 연방 차원에서 잡힌 선거를 정시에 치르지 않은 적이 없다"고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이 투표를 못 하게 좌절시키려는 권력자가 있다"며 트럼프를 비판했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선거일 변경 권한은 의회에 있다는 법조문을 트위터에 올렸다.

실제 트럼프에겐 선거를 미룰 권한이 없다. 미국 연방법은 대선일을 11월 첫 월요일 다음 날인 화요일로 정하고 있다. 대선일을 바꾸려면 연방법을 개정해야 한다. 미국 상원은 공화당이 다수지만, 하원은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어 의회 통과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트럼프가 대선 연기를 거론하고 우편투표로 인한 조작 가능성을 강조한 것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 지지층을 결집시켰던 2016년 대선 때 선거 전략을 다시 한번 꺼낸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16년 10월 대선 TV 토론에서 대선 승복을 묻는 질문에 "(유권자) 등록이 불가능한 수백만 명이 유권자로 등록한 상태"라며 "계속 (승복 안 해 상대의) 애를 태울 것"이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민주주의에 대한 훼손"이라고 비난했지만, 트럼프는 "소송까지 하겠다"며 부정선거 의혹을 계속 제기했고 결국 지지층 결집에 성공했다.

미 상무부가 이날 발표한 최악의 경제 성적표를 덮기 위해 대선 연기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그의 대선 연기 트윗은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947년 이후 최저인 연율(年率·연간으로 환산한 비율) -32.9%를 기록했다는 발표가 나온 지 15분 뒤에 나왔다. 바이든 전 부통령 선거 캠프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GDP 추락에 대한 관심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한 명백한 책략"이라고 했다.

선거 불복을 위한 정지 작업이라는 관측도 있다. 앨런 리트먼 아메리칸대 교수는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트럼프의 이런 주장은 재선 실패 때 '불법 선거 때문에 졌다'는 투로 변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선거에 질 것에 대비해 변명을 축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 19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대선 승복 여부 질문에 "나는 지는 것을 잘 하지 못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최근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10%포인트가량 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민주당은 실제 올 초부터 비밀리에 '트럼프 선거 교란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트럼프의 대선 불복 가능성에 대한 시나리오를 연구했다. 민주당은 선거 당일 투표 결과에서 트럼프가 조금 앞설 경우 우편투표 결과가 합산되기 전에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승리를 선언하거나, 트럼프가 큰 차이로 지더라도 '부정선거'라며 불복을 선언하는 것 등 8개 시나리오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