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왜 한동훈 검사장의 휴대전화 유심(USIM)카드를 압수하기 위해 폭행에 가까운 물리력까지 행사했을까. 휴대전화 단말기 작동 과정을 잘 아는 IT 전문가들은 지난 29일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생한 충돌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복수의 검찰 관계자와 법조인들은 "이런 유의 수사 경험이 부족한 정 부장검사가 휴대전화 단말기 작동 원리를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큰 사고를 친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충돌은 한 검사장이 영장을 집행하러 온 정 부장검사의 허락을 받아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려고 하면서 발생했다. 전화를 걸기 위해서는 휴대전화 잠금장치를 풀어야 한다. 한 검사장이 비밀번호를 입력하며 잠금장치를 풀려고 하는 순간 정 부장검사가 한 검사장을 덮쳤다. 정 부장검사는 "한 검사장이 비밀번호 마지막 자리를 입력하면 압수하려는 압수물 삭제 등 문제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한 검사장이 휴대전화를 조작해 단말기가 공장에서 출고될 때의 상태로 모든 저장 기록물을 삭제하는 초기화 작업을 하려는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유심카드는 휴대전화와 통신사 기지국 간의 통신 신호를 연결해주는 기능을 한다. 보통 사진 파일 하나 들어가기도 힘들 정도의 저장 용량을 가지고 있다. 디지털 포렌식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휴대전화의 대부분 데이터는 단말기 메인 메모리에 저장된다. 연락처나 사진, 통화 기록은 물론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메신저의 대화 내용, 통화 음성 녹음 등 현재 수사팀이 한 검사장 휴대전화에서 보고자 하는 대부분의 기록은 단말기 메모리에 저장된다.

한 검사장이 쓰던 아이폰의 경우에는 비밀번호를 10번 잘못 눌러야 데이터가 초기화된다. 그 경우에도 사진, 연락처 등 휴대전화 데이터가 지워질 뿐 유심카드 정보가 초기화되진 않는다. 설사 정 부장검사가 판단한 대로 한 검사장이 휴대전화 초기화를 시도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를 제지할 근거는 없다. 법원이 발부해준 영장은 휴대전화 단말기가 아니라 유심카드에 대한 압수 영장이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정 부장검사가 휴대전화 단말기와 유심카드에 저장되는 데이터 종류와 내용, 그것을 삭제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고 대응한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이 때문인지 서울중앙지검도 압수수색 당일에는 '한 검사장이 물리적 방해 행위를 했다'는 입장을 내놨으나, 당시 영상과 압수수색 참여자 진술 등을 확인한 뒤 '공무집행방해 행위는 없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안팎에서는 "유심 카드를 다른 공기기(휴대전화)에 끼워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보는 기법이 있는데 수사팀이 그 기법을 사용하려 한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모 검사는 "그렇다면 그냥 유심 카드만 받아서 포렌식을 하면 되는데, 변호인이 참여도 안 한 상태에서 '폭행'까지 가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정 부장검사는 또 페이스 아이디(얼굴 인식)로 한 검사장 휴대전화의 잠금이 해제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 비밀번호를 입력하느냐. 검사장님 페이스 아이디 쓰는 것 다 안다"고 소리쳤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한 검사장은 현장에서 실무자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한 검사장은 '서울중앙지검 차원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정 부장검사가 나간 뒤 수사팀 검사가 '개인적으로 죄송하다'고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압수수색에 참여했던 수사팀 일부도 "나는 정 부장검사 행위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 검사장 측은 밝혔다. 한 검사장이 압수수색 직후 현장에서 정 부장검사에 대한 '독직 폭행' 혐의 고소장을 작성한 것도 무리한 영장 집행이었다고 확신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날 밤 강남성모병원 응급실에서 퇴원한 정 부장은 30일에도 어깨 통증을 이유로 병원을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