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며칠 전까지 중용에 대한 해석 수정에 심혈을 기울인 사람이 있었다. 끔찍할 정도로 학문적 열정을 늘 불태웠던 사람, 바로 주희란 사람이다. 주자라고 불리는 주희는 북송 시대 학자들의 학문을 종합해 성리학이란 방대한 학문의 체계를 만들어냈다, 그의 사상 성리학은 동아시아 정신세계를 지배하게 되었고 특히 한국에서 크게 꽃을 피웠는데 성리학은 현재 한국인들에게 인식이 매우 좋지 않다. 그저 과거의 것, 옛날의 나쁜 것, 시대에 뒤떨어진 인습, 이런 이미지와 낙인에서 벗어나기 힘든 실정이다. 하지만 사실 당대 성리학은 전혀 옛것이 아니었다. 최첨단이자 최일류 학문이었고 최첨단 국가 경영 소프트웨어였다. 남송을 집어삼킨 원이 괜히 성리학을 제국 통치에 활용했던 것이 아닐 것인데 더욱 재밌는 것은 주희는 당시에 새로운 미디어 환경, 지식 전달의 혁신에 아주 기민하게 올라타고 그것들을 귀신같이 활용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사서집주를 비롯해 많은 그의 저서는 변화된 지식 전달의 구조와 환경에 맞추어 만들어내 대박이 난, 일종의 상품이자 기획된 아이템이었다.

주희가 살았던 복건 북부, 안휘성의 남부는 인쇄물을 발행하는 공방이 집중된 곳이었다. 예전보다 훨씬 싸고 빠르게 인쇄물을 대량으로 찍어내던 곳에 주희가 살았던 것이다. 일일이 사람이 필사하던 시절보다 훨씬 빠르고 값싸게 대량으로 지식을 전파할 수 있는 토대가 생겨나고 있었는데 지식 산업이 태동하고 뉴미디어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고나 할까? 주희는 자신의 학문과 사상의 전파에 이런 외부 환경의 변화와 흐름을 적극 활용했다. 요샛말로 하면 새로운 언론 플랫폼 환경을 적극 활용하거나 선도해서 대세가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사실 보면 볼수록 주희는 학문적 열정과 학문의 밀도보다 상업적 기획 능력과 감각이 더욱 대단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산업 발달이 촉발한 새로운 지식 전달과 유통의 형식을 정말 귀신같이 활용하고 발전시켰으니 말이다. 유가의 종사이자 주희의 선배인 공자도 사실 비슷한 맥락이 있었다. 새로운 지식 전달의 틀과 형식을 말할 때 공자 역시 반드시 언급해야 할 인물이다.

임건순 철학자

서주 시대부터 춘추시대까지 교육이란 것은 귀족 가문에서 가학(家學)과 비전(祕傳)의 형태로만 행해졌고 지식과 이론은 그렇게 폐쇄적으로 전수되었다. 하지만 철기 문명으로 사회 질서가 크게 이완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기존의 이론, 지식 전달의 틀까지도 무너졌다. 폐쇄적인 틀 안에 가두어진 지식이 갈수록 가문의 담장을 넘어서게 되었는데 그때 공자는 공개적으로 제자를 받아 키우는 교육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혈연집단 외부의 사람들을 받아들여 학문을 전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피 한 방울 안 섞여도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이는 그 지식의 전수자를 존경하며 공부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사제 관계란 것이 만들어졌다. 사제 관계란 지식 전수와 지식 전달의 관계가 공자 덕분에 만들어진 것인데 공자는 단순히 사상가가 아니다. 주자와 비슷하게 새로운 지식 전수의 모델과 형식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공자도 그렇고 주자도 그렇고 둘 다 괜히 대세가 된 것이 아닐 것이다. 왕양명과 그의 제자들도 마찬가지다. 군중이 모인 장터를 오가면서 게릴라 콘서트식의 강학을 했는데 역시나 새로운 지식 전달의 형식을 만들어내 크게 성공을 한 케이스이다.

책이 안 팔린다고 아우성이다. 도서 시장은 빙하기라고 한다. 본 필자가 저술가인지라 절절히 느끼고 있다. 책을 써서 먹고사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 되었다. 아울러 모든 활자 매체가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하는데 현재 대세는 영상 매체 유튜브다. 거기에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교육이 많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현실에 지금 우리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식으로 새롭게 지식의 전수, 전달, 유통의 틀을 만들어가야 할지 질문해야 할 때다.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새로운 방법으로 전파할지에 대해 물어야 하는 시대가 오지 않았나 싶다. 주희와 공자, 왕양명이 지금 여기에 온다면 어떤 조언을 할까? 유튜브와 코로나19의 세상인지라 무척이나 궁금한데 특히 저술가들에게 어떻게 활로를 찾으라고 조언할지가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 그들이 활로를 찾아야 할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