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진 정치부 차장

더불어민주당은 '원팀(one team)'을 강조한다. 이해찬 대표는 2년 전 당 대표에 출마했을 때, 또 이번에 자기 후임으로 나선 후보들에게, 한결같이 "원팀임을 잊지 말자"고 한다. 민생당 출신 박지원 전 의원도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로 지명되자 곧바로 "원팀이 되겠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 민주당을 보면 '원팀'이 아니라 학교 '일진'이 떠오른다. 힘센 학생 여럿이 약한 학생 하나를 '이지메(집단 괴롭힘)'하는 장면이다.

최근 공격 대상은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다. 태 의원은 이인영 통일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사상 전향했느냐"고 물어본 죄로 1박 2일간 당했다. 이 장관이 "태 의원은 남측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것 같다"고 답한 것을 신호로 '일진'들이 나섰다. 윤건영 의원은 "천박한 사상 검증"이라고, 윤영찬 의원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더 배우라"고, 고민정 의원은 "대한민국 국민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백원우 전 비서관과 가깝다는 문정복 의원은 다른 사람 발언을 태 의원 발언으로 착각하고, "변절자의 발악"이라는 오발탄까지 날렸다. 그야말로 앞뒤 재지 않은 '융단폭격'이다. 이튿날엔 민주당 최고위원들이 나서 "의원 자격 없다" "이런 분이 사상 검증을 하다니"라고 했다.

한마디로 "탈북자가 뭘 아느냐"는 것이다. 오랜 세월 '군주국'에서 살아온 태 의원으로선 '남측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 있다. 북한 관련 예측을 잘못한 적도 몇 번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청문회에서 질문한 걸 갖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 질문을 대신 해주길 바랐던 국민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태 의원은 우리 사회 약자다. 이 땅에 학연·지연·혈연 아무것도 없는 최약 비주류다. 정치적 존재감도 미약하다. 이런 사람 하나를 권력자들이 줄줄이 나서서 두들겼다.

'권력형 이지메'는 안팎을 가리지 않는다. 같은 당 금태섭 전 의원은 '조국 사태' 때 입바른 소릴 한 죄로 아직도 당 윤리위 심판대에 올라 벌을 서고 있다. 자기들이 임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은 그들 말대로 '너절해'질 때까지 못살게 굴었고, 최근에는 탈원전 정책을 감사하는 최재형 감사원장을 째려보고 있다.

속칭 '문빠'의 이지메 대상은 상상 초월이다. 그들은 윤미향 의원의 정의기억연대 자금 유용 의혹을 제기한 이용수 할머니를 "일본 앞잡이"라고 공격했다. 주한 미국대사에게는 "콧수염이 일제 총독을 연상시킨다"고 시비를 걸었다. 그는 결국 수염을 잘랐다.

1984년 이른바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사건'이 있었다. 서울대 운동권 학생들이 청강하러 온 방송통신대 학생 등 무고한 시민 4명을 경찰 '프락치'로 몰아 최대 6일간 불법 감금·폭행했다. 지금까지 정신분열 후유증을 호소하는 피해자도 있다. 당시 운동권은 우리 편 아니면 모두 적으로 간주했다. 인권, 소수자 보호 등 진보의 '가치'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고, 시대 상황이 그랬다고, 그들은 말한다.

패거리 짓기는 인간 본성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생존력 극대화를 위해 DNA에 각인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본성을 이성으로 억제하며 진보해왔다.

36년이 지난 지금 민주당은 어떤가. 당시 사건 관련자로 지목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은 이해찬 대표의 양팔 역할을 하고 있다. '진보'를 내세우지만, 그 '가치'는 여전히 내장(內裝)하지 못했다. 원팀에 끼지 못한 수많은 소수자가 일진 눈치를 살피며 숨죽여 산다. 일진이 가해자인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은 패거리의 그늘에 가려졌다. 진보는 간데없고 패거리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