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리비아 통합정부측 군인들의 모습

수퍼 파워 미국의 리더십이 사라진 세계의 모습은 어떨까. 워싱턴포스트(WP)는 25일(현지시각) ‘미국의 영향력이 사라진 세계’란 제목의 사설에서 좋은 사례를 “아프리카에서 볼 수 있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아프리카 주요 분쟁에서 발을 빼면서, 아프리카는 미국의 동맹국끼리도 치고 받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 전세계 국가들이 서로에게 총을 드는 약육강식의 전쟁터로 변했다는 것이다.

WP는 리비아의 혼란을 첫 사례로 들었다. 지난 2011년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축출된 이후 리비아는 지속적인 내전을 겪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리비아 내전에 개입하거나 중재할 생각은 전혀없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관리들은 리비아 정책에 대해 “적극적 중립”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WP는 비판했다. 국무부의 한 고위관리는 “우선적이면서 무엇보다도 (리비아 내전은) 유럽의 문제”라고 했다. 한마디로 미국은 지켜볼 뿐이라는 것이다.

내전으로 폐허가된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의 쇼핑몰

그러자 리비아는 국제 대리전이 펼쳐지는 곳이 됐다. WP에 따르면 리비아 서부를 주로 통치하는 리비아 통합정부(GNA)는 터키·카타르·이탈리아가 지지하고 있고, 리비아 동부의 유전지대를 중심으로 한 리비아국민군(LNA) 세력은 러시아·이집트·아랍에미리트·프랑스의 후원을 받고 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까지도 서로 편이 갈린 것이다.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몇 달 동안 시리아, 수단, 러시아에서 온 수천명의 용병들이 리비아 내전에 투입됐고, 러시아는 전투기를 터키는 드론을 배치했다. 여기에 이집트 의회도 지난 20일 리비아 파병을 승인했다.

이런 가운데 에티오피아가 청나일강에 건설 중인 대규모 댐 때문에, 에티오피아와 이집트, 수단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지만 누구도 이 갈등을 중재하지 못하고 있다. 나일강은 에티오피아에서 발원하는 청나일강과 우간다에서 발원하는 백나일강이 수단에서 합쳐져 이집트를 거쳐 지중해로 나간다. 이중 청나일강이 유량의 75%를 차지한다. 에티오피아가 청나일강 상류에 거대한 댐을 지어 수력발전을 하려하자, 수량부족을 우려한 나일강 하류의 이집트가 극렬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청나일강에 건설된 그랜드 에티오피안 르네상스 댐의 모습. 지난 6월12일에 찍힌 위성 사진(위)엔 물이 많지 않지만, 7월12일에 찍힌 위성사진(아래)엔 계곡을 가득 채울 정도로 물이 불어나 있다.

지난 2013년부터 건설된 이 댐에 에티오피아 정부가 올들어 물을 채우기 시작하면서 주변국들의 갈등이 커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이 분쟁에 대한 중재는 실패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집트의 독재자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에 수차례 호감을 표시하는 등 미국이 이집트 편이란 인상을 줬다. 이 때문에 미국의 정책으로 ‘갈등과 불협화음’만 발생했다고 포린폴리시는 전했다.

미국이 이들 분쟁에 개입해서 중재할 지렛대가 부족한 것도 아니라고 WP는 지적했다. 에티오피아와 이집트는 미국의 오랜 동맹국이고, 미국이 대규모 원조를 하고 있는 국가들이다. 또 리비아 내전에 개입하는 유럽국가들은 나토 동맹국이고,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엔 미군 기지가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지렛대 사용을 모두 포기했다.

WP는 “한때 (세계 분쟁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같은 악덕 배우들을 선별해 내느라 바빴을 초강대국 미국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